과거엔 크기가 중요했다. 크다는 것은 이윤과 성장을 의미했다. 공급을 지배하고 시장을 지배한다는 뜻이었다. 가치라는 것이 큰 조직에 적합한 방식으로 부가됐기 때문이다. 가치는 효율적인 공정과 광범위한 유통, 대규모 연구개발에 의해 증가했다. 대기업은 주식을 공개함으로써 자금을 더 많이 확보해 한층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성장동력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강한 중소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 국가의 정책적 공통점은 해외진출 활성화를 중소기업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 해외진출은 수출증대는 물론 기업의 세계화 촉진과 성장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내 고용창출에 기여함으로써 국가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 중소기업이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수출과 투자를 다각화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이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을 강화하는 지금, 이들의 동향을 살피고 우리 정부와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강소기업이 미래다>-①진짜 경쟁의 힘, 독일에서 배운다(하)

[미디어펜=김세헌기자] 중소기업의 세계화는 지속 성장과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국내시장에서도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세계화는 중소기업 생존에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주요 수출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등 현재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기술인력 양성과 같은 독일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면 제조업의 경쟁력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 보편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각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민족분단이라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내 국제사회에서 큰 인정을 받았다.

독일 인구는 약 8200만명으로 통일 한국(남한 5000만·북한 2400만·재외동포 700만)에 견줬을 때 차이가 크지 않다. 천연자원이 많지 않아 인적 자원에 의존하고, 제조업이 강해 이를 바탕으로 수출 강국이 됐다.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 국가인 독일은 헌법재판소와 중앙은행, 철도청 등 국가 주요 관청들이 수도 베를린이 아닌 카를수르에, 프랑크푸르트, 본 등 지방 도시에 배치돼 있다. 바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다. 전 세계 2500여개의 강소기업 가운데 약 1500여개가 독일 기업이다. 중소기업 중심의 튼튼한 경제 산업 구조가 독일을 강한 수출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 뒤에 후유증을 앓고 있는 반면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해 유럽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과 혜안을 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다.

   
▲ 독일-한국 경제규모 비교 /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관련 기관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 기준으로 4%의 낮은 실업률과 선진국 중에서도 높은 3%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경상수지 1위 국가로 중국을 제치고 수출을 통해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나라이기도 하다.

독일은 유럽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의 30%를 차지하며 세계시장 수출 점유율도 세계 3위에 달한다. 유럽 주요국들이 금융위기에 흔들리던 시기에도 유일하게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지만 경쟁력있는 독일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독일은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R&D 투자를 지속해왔다. 지난 2012년 기준으로 R&D 투자순위로 살펴본 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 독일기업 41개가 이름을 올린데 반해, 한국은 13개에 머물렀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도 독일(6.5%)이 한국(3.1%)의 2배 이상이다.

독일의 R&D 경쟁력은 국가 전역에 구축된 300여개의 산업클러스터를 통해 강화된다. 정부는 클러스터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이후엔 기업중심의 강력한 산학연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자생적인 선순환구조가 자리를 잡게 됐다.

   
▲ 독일은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인 R&D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 2012년 R&D 투자순위에선 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 독일기업 41개가 이름을 올렸다. / 미디어펜 자료사진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통한 높은 노동생산성도 경쟁령 향상의 원천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 2013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1위, 노사관계 생산성은 8위로 평가받았다. 반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8위, 노사관계 생산성은 56위를 기록했다. 매년 생산성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 컨퍼런스보드의 연구에서도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32.3달러(30위)로 독일(57.4달러, 7위)에 못미칠뿐만 아니라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32.8달러, 29위)보다도 낮았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독일의 높은 노동생산성의 비결로 손꼽힌다. 기업이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근로자는 근로시간과 임금인상을 양보하는 방식으로 노사 합의에 도달해왔다. 다임러벤츠의 경우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에도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20억 유로의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노사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 결과 모든 근로자는 노동시간을 8.75% 감소시켰으며, 각종 성과급과 임금인상 계획을 유보시켰다. 독일 정부가 재계와의 공동작업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등을 포함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단행한 것도 실업률 증가 없이 금융위기를 넘기는 데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독일은 기업경쟁력의 원천인 기술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에서 기술은 전통과 장인정신의 산물로 역사적, 국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독일에서는 60%의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와 현장이 결합된 형태의 직업교육(Dual System)을 통해 전문기술을 습득한다.

지금은 대기업군에 속하는 BMW의 경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매년 800여명의 인턴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 개발, 제작, 정비 등 12가지 전문 직무에 따라 기술을 전수 받고, 졸업 후에 동 분야에 바로 취업하게 된다. 이 외에 폭스바겐, 다임러 등 50만개 이상의 대중소기업들도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업 수요와 일치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독일의 시스템은 개인·기업·사회에 긍정적인 선순환을 가져오고 있다. 숙련된 기술인력을 기업에 공급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청년 실업률을 낮춰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 독일에서는 60%의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와 현장이 결합된 형태의 직업교육을 통해 전문기술을 습득한다. / 미디어펜 자료사진

독일은 각 제품군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유달리 많다. 특정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우량기업이 미국, 일본 등에 비해 4~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기업은 전통적인 강점분야의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기술선도로 시장을 재편해 나가는데 능숙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160년의 역사를 가진 지멘스는 전통적인 전자기기 공학 기업이다. 전자부분 기술역량에 집중해 최초의 진공청소기, 인공심장박동기 등 가전제품과 의료기기를 넘나들며 획기적인 전자기기를 개발해왔다.

지멘스는 기술선도로 시장 자체를 창조해 진출하지 않은 전자제품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이며, 현재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복합기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혁신역량 등에서 글로벌 기업과 차이가 있다”면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일의 히든챔피언과 같이 중소기업 스스로 R&D 활동에 힘쓰는 한편 정부도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