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또 보고 싶다. 궁금하다. '나혼자산다'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든 건 참 오랜만이다. 이번 방송(3월 3일)에는 KBS2 주말드라마 '삼남매가 용감하게'로 누나들의 마음을 훔친 '직진 연하남' 이유진이 나왔는데, 말끔한 인상과 어울리는 감성 라이프스타일이 보기 좋은 한편 반지하 방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의외성이 놀라웠다.

자취 1년 차 배우는 철거, 몰딩은 물론 바닥과 간접등까지 손수 시공해 칙칙했던 반지하 방을 편집숍 느낌의 감성 하우스로 탈바꿈시켰다. 1년간 작품에 캐스팅되지 않아 철거 일을 하고 공장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카펫, 선반 등 인테리어 용품을 하나씩 사들였단다. 휴지와 물티슈, 섬유 탈취제, 주방 세제까지 다른 용기에 옮겨 사용하며 남다른 인테리어 철학을 내비쳤다.

일어나자마자 침구를 정리하고, 커피를 마시고, 스스로의 감성에 취한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한 청년. 수건을 개고, 마당을 꾸미며 그가 전한 말은 '자신을 아끼자'는 것이었다. 이유진은 "제가 저를 키운다는 느낌으로 산다"고 했다. 좋은 밥을 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고,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것만 보려는 배우의 마음이 안방극장에 따뜻하게 옮아간 다큐 한 편이었다.


   
▲ 사진=MBC '나혼자산다' 방송 캡처


▲ '나혼자산다'의 오리지널리티, 잔잔한 일상

이번 이유진 편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한 사람을 관찰하고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회차였다. 스타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소모품처럼 이용되고, 게스트들이 무성의하게 하하호호거리는 관찰 예능의 홍수 속에서 담백한 다큐가 참 그리웠다. 거창하지 않아도 공감되며 눈길이 가는, 소소한 삶의 스케치를 바랐다. 시청자들의 마음도 같았는지, 이번 방송은 최근 8주간 가장 높은 시청률인 8.3%(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나날이 취업률과 출산율이 추락하는 기형적 사회구조 속 미디어도 고단하고 무력한 젊은이들의 표정을 조명하고 있다. 이 속에서 생기 넘치고 소신 있는 청춘배우를 마주하니 조금 숨이 트였다. 맹목적인 미래 낙관이나 '욜로', '플렉스', '소확행', '힐링' 같은 회피형 인생살이 제시가 아닌,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알차고 본받을 만한 청년의 하루였다.

▲ 동경과 박탈감 사이… 화제성도 좋지만 결국 공감 잡아야

최근 방송 중 이유진 편이 유독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또 혼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진짜로 들려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말 안방극장을 책임지는 라이징스타가 영화 '기생충' 속과 비슷한 반지하 화장실에서 씻는 모습이라니. 일산의 본가에서 생활용품을 털어오는 모습, 짐을 옮기다 쇼핑백이 뜯어져 달걀이 깨지고 휴대폰이 박살 나는 엔딩도 자취생들에겐 익숙한 장면이었다. 여기에 부친인 배우 이효정의 자장면 요리, 중고거래 애용 면모까지 러블리한 홈드라마가 펼쳐져 흥미를 높였다.


   
▲ 사진=MBC '나혼자산다' 방송 캡처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이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재미 아닐까. '나혼자산다'를 통해 각계각층의 스타들을 만나고, 휘황찬란한 삶의 방식을 마주하는 것이 신선했던 때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 위화감이 깊어졌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엿보며 관음을 충족했던 재미가, 성공한 삶의 찬란함을 먼발치서 바라봐야 하는 들러리의 위치로 역전된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들과, 프로그램을 홍보의 장으로 만끽하는 스타들. 한강 뷰와 고급 인테리어, 맛있는 음식. 그들에겐 당연하고 누려야 마땅한 일상일 텐데 '나 혼자 잘 산다'라는 풍자까지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에겐 박탈감과 불편함이 컸다. 

한 푼 아끼려 유쾌한 궁상을 떨고, 오랜만의 특식에 들뜨던 옛 출연자들의 모습. 시청자들이 초창기 '나혼자산다'를 그리워하는 것도 연예인들에게서 공감과 친숙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나와 다른 세상을 살 것만 같은 이들에게서 형·동생 같은 포근함을 느끼고, 마음 맞는 친구의 냄새를 맡고, 가족 같은 편안함을 취한다는 것. 눈이 휘둥그레지는 성찬이나 아주 특별한 라이프 코스가 없어도 괜찮다는 것.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 사진=MBC '나혼자산다' 포스터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나혼자산다'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을 슬로건으로 한다. 때로 휘청이고 구설에 휘말리고 수 차례 위기를 마주했지만, 그때마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고군분투가 프로그램을 지탱했다. 이젠 고정 출연자인 무지개 멤버들의 끈끈한 멤버십으로 한층 더 견고해졌지만, 계속해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근본이다. 슬로건 그대로 '사람'과 '삶'이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시간보다 평범한 시간이 더 많다. 하지만 삶이 시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도 인생의 맛과 멋을 찾으려 골똘히 노력하는 미덕을 지녔다. 예상치 못한 경험에 맥박 치고, 뜻밖의 감동에 들뜨는 삶이다. 인간의 아름다움도 그렇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다양한 삶의 중계, 애정 어린 시선. 그런 요소들이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나혼자산다'를 풍성하게 해왔다.

프로그램이 가진 독보적 강점이다. 다채로운 인간군상과 서로 다른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1인 가구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잘 보살펴준 '나혼자산다'. 지금처럼 모든 이의 삶을 애지중지하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