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민서 기자]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 우에하시 나호코 작가가 신작 '향군(香君) : 항기의 소리를 듣는 자'를 통해 7년 만에 독자들과 만난다. 

'향군'은 '향기로 이루어지는 생태계 커뮤니케이션'이란 소재를 판타지 장르에 녹여낸 작품이다. 뛰어난 상상력, 섬세한 묘사, 흡입력 있는 전개를 고루 갖춘 서정적 판타지의 정수다. 

   
▲ 우에하시 나호코 작가의 신작 '향군:향기의 소리를 듣는 자'. /사진=사유와 공감 제공


장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상(上), 하(下), 총 2권으로 구성됐다. 생물이 내뿜는 화학물질, 즉 향기를 소리로 느끼는 소녀 아이샤와 올리애, 마슈라까지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 모두 향군이라는 신비한 존재와 연관이 있다.

특별한 후각을 지닌 아이샤는 서칸탈 번왕 주쿠치에 의해 생명을 위협 받는다. 제국 시찰관 마슈는 아이슈의 능력을 알아차리고 그를 구해낸다. 아이샤는 마슈 집안이 운영하는 농원에 들어가 신분을 숨긴 채 생활하는 향군 올리애를 만나 보필한다. 특별한 후각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올리애에게 아이샤는 마음을 열기 시작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다. 

작품 배경이 되는 우마르 제국은 향기로 만물을 읽어내는 살아있는 신 향군과 그가 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오아레 벼의 힘으로 다른 나라를 종속시키며 대륙의 지배자가 됐다. 하지만 오아레 벼에 역사서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병충해가 발생하면서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식물이 뿌리나 잎줄기에서 특정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하는 다른 종의 생장·발아·번식에 영향을 주는 작용 '알렐로퍼시(allelopathy)'에서 영감을 받아 '향군'을 집필했다.   

작중 향기의 소리는 아이샤, 올리애, 마슈라 세 사람을 엮어주는 끈이자 향군과 함께 제국을 건립한 초대 황제가 감춘 비밀을 해독할 단서이다. 또 위기에 빠진 제국을 구할 실마리이기도 하다. 

저자는 향기의 소리라는 식물과 생물의 존재 방식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소설 작품이 가져야 할 흥미로움을 놓치지 않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험준한 산맥부터 비옥한 평야, 바다 한 가운데의 섬까지, 작품 속 거대한 무대를 전문가의 자문에 기반해 묘사함으로써 작품 몰입도를 높였다.

작물과 인간 관계에 대한 은유는 다양성이 부재한 산업의 위험함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오아레 벼에 닥친 병충해로 더 큰 재난이 벌어지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저자는 이러한 혼돈 상태를 압도적 권위를 내세워 종식시키지 않았다. 향군이란 초월적 존재를 작품 중심에 두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몫으로 뒀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을 재난을 헤쳐 나갈 실마리로 제시했다. 

'향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지적 그리고 각기 다른 재난의 전선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을 향한 저자의 응원이 녹아있다. 

한편, 우에하시 나호코는 1962년 일본 도쿄 태생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다. 1989년 '정령의 나무'로 데뷔해 아동문학, 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대표작으로는 '정령의 수호자'를 비롯한 수호자 시리즈가 있다. 작가는 이 시리즈로 노마 아동문예상 신인상,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후생성 아동복지문화상, 로보노이시 문학상, 이와야 사자나미 문예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문학계의 거장으로 떠올랐다. 2014년에는 '작은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사슴의 왕', '짐승의 연주자', '달의 숲에 신이여 잠들어라', '고적의 저편'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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