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치열한 장외전을 벌이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삼성물산이 19일 법정에서 처음 대결을 펼친다. 지난 4일 엘리엇의 기습적인 등장 이후 보름 만이다.
17일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용대 민사수석부장)는 양측의 법률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엘리엇이 제기한 2건의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진행한다.
과거 SK와 공방을 벌인 영국계 투자 기관 헤르메스의 법률 대리를 맡은 최영익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넥서스가 엘리엇의 법률 대리인으로 나선다. 넥서스는 '삼성 저격수'로 유명한 중견 금융전문 로펌이다. 삼성물산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에 사건을 맡겼다.
넥서스의 최 변호사는 우일아이비씨 대표 변호사 시절인 지난 2004년 3월 삼성물산과 법적 다툼을 벌인 영국계 투자자 헤르메스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바 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9년 동안 김앤장에서 해외 증권 발행, M&A 분야 등 업무를 맡은 김앤장 출신이다.
앞서 엘리엇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과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각각 제기했다.
합병 비율이 자산 가치가 큰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해 내달 열릴 주총을 막아 달라는 요구다. 주총이 열려도 합병 결의를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엘리엇은 또 삼성물산이 자사주 899만주(5.76%)를 우호 관계에 있는 KCC에 넘기는 행위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이미 주식 거래가 끝나 KCC에 넘어간 지분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막아달라고도 요구했다.
엘리엇은 표면적으로는 합병 비율의 '불공정성'을 주된 문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 간 합병에서 시가를 유일한 합병 비율 산출 기준으로 삼게 돼 있어 주총 자체를 막아 달라는 엘리엇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합법적 틀에서 합병 비율이 결정된 만큼 주주들 사이에 합병 비율에 관한 견해차가 있더라도 주총 논의와 표결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다툼에서 KCC에 넘어간 삼성물산 자사주의 의결권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 입장에선 삼성물산 자사주에서 KCC로 넘어간 5.76% 지분의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삼성그룹 우호 지분을 19.75%에서 다시 13.99%로 되돌려 놓는 것이 표 싸움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제3자에 넘기는 행위에 대해선 법조계와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어 치열한 법적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하급심 판례상으로는 분쟁 중인 회사의 경영진이 우호 지분을 늘리려고 자사주를 매각한 행위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다.
2003년 서울중앙지법은 소버린자산운용이 SK가 자사주를 하나은행에 넘기기로 한 것이 부당하다고 낸 의결권침해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SK의 손을 들어줬다.
2007년 서울북부지법도 동아제약 강문석 이사 등이 동아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2007년 수원지법 성남지원도 유사한 취지의 결정을 했다.
반면 2006년 서울서부지법은 이해영씨 등 4명이 최대주주에 넘어간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당시 특정인에 자사주를 판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기존 판례 다수가 자사주를 매각한 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원이 이번에 엘리엇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다소 작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번 사건 심리를 맡은 김용대 민사수석부장은 2007년 북부지법 사건의 재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