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 “지금까지의 시간은 정말 악착같이 저승사자에게 ‘내환자 내 놓으라’고 물고 늘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고생을 알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주고 서 있는 두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주세요”-지난 12일 한 매체에 보낸 메르스 병원 간호사의 편지.

메르스 환자 사망자가 나오면서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이 병원 간호사의 편지는 모든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울렸다. 메르스는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이 넘어 가면서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격리자들에게 쏘아지는 차가운 시선은 이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최일선에서 메르스 환자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치르고 있는 의료진 가족을 왕따 시키는가 하면 환자도 아닌 격리자를 몹쓸 전염병이라도 옮기는 환자처럼 매도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거나 거쳐간 전국의 병원들에 따르면 이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과 가족들에게 최근 들어 '왕따' 현상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의료진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학부모나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아이를 학교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경기지역 한 병원의 경우 간호사들의 남편들이 직장에서 당분간 쉴 것을 요구 받았다. 단지 메르스 치료센터 간호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 같은 요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염자도 아닌 자가격리자라는 이유로 이들을 왕따 시키는 일이 적잖게 일어나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메르스 꼭 알아야 할 10가지.
의심환자가 거쳐 간 경기지역의 한 병원에서는 응급의료과장의 실명이 지역사회에 알려져 가족과 자녀가 기피대상으로 거론되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대전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최근 아들의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확진자가 발생한 부산의 한 병원 의료진들도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으로부터 '등교를 하지 말아 달라'는 통지문을 받았다. 이 병원에는 의료진의 자택을 묻는 전화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대전에서 치료 중이던 메르스 확진 환자 2명이 이송된 충북의 한 메르스 치료 거점병원 의료진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당분간 등원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진료한 뒤 14일 동안 격리됐던 한 병원장도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들을 학교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당 병원장은 "제가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 아이는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다. 의학적으로 설명해 드렸는데도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상당히 불안해 하고 있어서 굉장히 억울한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자가격리자 가족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집에 갇혀 살면서 겪는 생활불편과 심적 불안감은 물론,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도 인근 지역주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자가격리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해당 병원과 자가격리자의 주소지 등을 상호 교환하면서 이른바 ‘메르스 요주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자가격리자 B씨는 “한 번 자가격리자로 낙인이 찍히면, 증상이 없어 해지된 경우에도 왕따 신세가 될 수 있다”며 “확진이나 의심환자가 아닌 단순 자가격리자에 대해서는 신상정보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유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료진과 격리자를 왕따 취급하는 비이성태도를 비판하고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글도 줄을 있다.

antk****는 "메르스 치료 거부하는 의사는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메르스 치료하고 있는 의사 가족은 전염병 환자 취급 진짜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는구나."()
'cjh1****'는 "진짜 국민성 수준 하고는…참 이기적이다", 'rink****'는 "무한 이기주의의 진상을 보여주네요. 저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불안감이 든다는 건 이해하지만 교사도,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더 극대화시키는 짓을 왜 하는 건지…"라고 밝혔다.

또 'casi****'는 "고생하는 의료진한테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정말 이기적인 국민성이다", 'squi****'는 "의료진이 진료 안 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이나 해봤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