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구급대원 자녀까지 '왕따'…메르스보다 위험한 '갈등' 바이러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메르스가 한 달여를 넘기면서 진정세로 접어들었지만 불신과 갈등, 분열이 빚은 엉뚱한 불통이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튀고 있다. 의료진 자녀들을 왕따시키고 자가격리자들을 전염병 환자인 듯 외면하는 싸늘한 눈길이 메르스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로 번지고 있다.

‘공기 중 전파는 없다’는 전문가 의견은 무시당했고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이 ‘학교 휴업은 과도한 처사’라며 수업재개를 권고할 만큼 우리사회는 지나친 공포에 취했다.

SNS에는 정체불명의 괴담과 유언비어가 넘쳐났고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불안감을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악용하면서 불신의 괴물이 대한민국을 삼켰다. 정부의 정보 공개 등 초동대처 미흡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를 자신의 정략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국민의 불안감과 사회 혼란은 결국 불신과 분열로 치달았다.

   
▲ 15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서울성모병원에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 등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급기야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병원 가기를 기피하다 숨진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한 임신부는 정기검진을 미루다 아기를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일어났다.

메르스는 잦아 들고 있지만 지나친 공포가 불러온 메르스 후유증이 사회 곳곳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다.

최일선에서 메르스 환자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치르고 있는 의료인의 자녀를 일부 학교에서 ‘왕따’ 시키는 몰지각한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환자가 아닌 격리자를 몹쓸 전염병이라도 옮기는 환자처럼 매도해 꺼린다.

이런 분위기에 간병인들도 하나 둘 떠나면서 환자들은 또 다른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 환자와 밀접접촉을 해야 하는 의료진이나 간병인들은 가장 먼저 감염위험에 노출된다. 유독 의료진과 간병인의 메르스 확진자가 많은 이유다. 뿐만 아니다. 환자 이송을 전담하는 구급대원들도 쏟아지는 이웃의 싸늘한 시선과 사회의 냉대에 힘들어 하고 있다.

구급대원들은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메르스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복과 고글·마스크·장갑·덧신을 착용한다.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환자를 이송하고 옮기는 대원들은 땀범벅이 된 채 한 명의 환자라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의료진과 구급대원들. 보이지 않는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진정한 영웅들이다. 이들은 말한다. 다리가 무너져 내릴만큼 서 있기조차 힘들다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메르스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 메르스 영웅,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메르스 꼭 알아야 할 10가지.
이런 그들의 마음과 가족들에게 누군가가 돌을 던지고 있다. 한 구급대원은 이웃과 환자, 병원관계자들까지 접촉을 꺼리는 것도 서운하지만 “진짜 가슴이 무너지는 건 학교에서 아들의 별명이 바이러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나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자녀를 학교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라고 요구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경기지역 메르스 치료센터에 다니는 간호사 아내를 둔 남편은 직장에서 당분간 쉴 것을 요구 받았다.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대전의 한 병원 간호사는 최근 아들의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

확진자가 발생한 부산의 한 병원 의료진들도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으로부터 '등교를 하지 말아 달라'는 통지문을 받았다.

대전에서 치료 중이던 메르스 확진 환자 2명이 이송된 충북의 한 메르스 치료 거점병원 의료진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당분간 등원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자가격리자 가족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한 자가격리자는 “한 번 자가격리자로 낙인이 찍히면, 증상이 없어 해지된 경우에도 왕따 신세가 될 수 있다”며 “확진이나 의심환자가 아닌 단순 자가격리자에 대해서는 신상정보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유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메르스 진료 의료진 자녀를 귀가조치하고 전교생을 상대로 부모가 메르스 치료병원에 근무하는지를 조사하고 자가 격리자를 주홍글씨로 낙인 찍는 사례들이 늘면서 누리꾼들은 ‘이기주의의 극치’라며 혀를 찼다.

아이디 antk****는 "메르스 치료 거부하는 의사는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메르스 치료하고 있는 의사 가족은 전염병 환자 취급 진짜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는구나.", cjh1****는 "진짜 국민성 수준 하고는…참 이기적이다", casi****는 “고생하는 의료진한테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나. 정말 이기적인 국민성이다”, squi****는 “의료진이 진료 안 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이나 해봤나?”, bohh****는 “피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직접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과 그 외 여러 직업적인 특성상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응원하는 분위기로 가야지. 개념 없는 우리나라 시민의식 부끄러운 줄 알아야. 우리나라 국민성 이것밖에 안 되나요? 우리 이러지 맙시다.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게 될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등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몰이해가 극단의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입방아를 부추기며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의료진과 가족들에 대한 이른바 ‘신상 털기’가 인터넷 공간에서 난무하고 편견과 따돌림이라는 괴물이 의료진과 구급대원을 울리고 있다.

쓰나미처럼 덮쳤든 메르스는 이제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 이들을 살려내고자 최일선에서 위험과 싸우고 있는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다. 응원을 보내도 모자랄 이 판에 돌을 던지는 건 우리사회의 영원한 희망과 미래에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라도 철창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이들의 노고에 진정 박수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금 모으기로,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닥쳤던 신종플루도 어느 나라보다 슬기롭게 빠르게 극복했다. 그 밑바닥에는 나보다 남을,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민족성이 있었다. 메르스가 불러 온 불신과 분열·이기주의를 걷어내고 이제 신뢰와 화합으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갈등을 치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