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외교안보팀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독일이 통일을 맞기 직전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다른 서구 지도자들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동독주민들의 탈출 러시로 혼란이 가중됐다. 당시 동독에는 50만 명 가까운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통치하는 소련정부가 더 이상 이런 혼란에 관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공산정권은 붕괴됐다. 독일 통일에는 서독의 동방정책이 밑거름이 됐다. 빌리 브란트 총리 때 도입돼 헬무트 슈미트 총리를 거쳐 헬무트 콜 총리까지 동방정책을 계승했지만 당시엔 서구 학자들과 언론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서독의 동방정책은 매우 실용적이며 ‘비즈니스처럼’ 운영됐다. 정책의 핵심은 동독 정권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면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지원이 혹시라도 고사 상태의 동독경제를 안정화시켜서 통일에 걸림돌이 될 위험이 다분했지만, 야당 시절 동방정책을 비판했던 콜 총리마저 두 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결국 이익일 것으로 확신했다. 서독정부는 동독주민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통일을 주장했고, 공산정권의 압제를 비판하는 압박 기조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클레이 클레멘스 교수의 저서 ‘서독 기민기사당의 동방정책’의 일부를 요약해봤다. 

클레멘스 교수는 책에서 남북통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결론적으로 독일 통일 시기 주변정세와 남북한이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유사성을 찾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동서독은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적이 없고, 동독이 군사·정치적으로 소련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동서독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적이 없었던 점 등을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1990년 동독이 붕괴할 때보다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는 훨씬 복잡하다. 따라서 독일통일과 남북통일을 그대로 대입할 순 없지만 여전히 통일을 논할 때 독일에서 교훈을 찾는 일은 유익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독일의 동방정책처럼 대한민국에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유지될 대북정책이 있을까.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까지 중단된 마당에 그런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래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라”고 통일부에 지시한 발언에 유감을 표하고 싶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남한 지도를 펴놓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확대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나온 것이다. 그날 대통령실은 이런 대통령 지시와 인도적 지원 문제는 별개라며 “인도적 대북지원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은 그 자체로 북한을 향한 메시지가 되고, 정부부처의 업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적개심이 고조되고 해당부처 업무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당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를 조장해서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통일부는 지난달 23일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대북지원사업자 지정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대북지원사업자 수가 증가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됐고, 대북지원환경이 매우 달라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 당시 설명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알고 보니 통일부가 아닌 관련부처에서 제도 정비 차원에서 검토한 결과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 도착해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4.26./사진=대통령실

물론 통일부가 내놓은 사후 설명처럼 최근 들어 남북한 모두 중국업체를 통해 합의하는 3자 합의 형태로 대북지원사업이 이뤄지다보니 최종적으로 어떤 물자가 북한에 들어가는지 우리가 직접 확인하기가 힘들고, 북한에서도 남한에서 온 물자인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대북지원사업자 가운데 통일부 등록증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사업은 남북관계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오랜 기간 이어져온 것으로 이번에 대북지원사업자 지정제도는 수십년만에 없어지게 됐다. 정부는 “대북지원사업자 지정제도 폐지로 누구나 북한과 협의만 되면 대북지원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 조건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기금 지원에 신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금처럼 남북 간 작은 소통채널 하나라도 절실할 때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사업은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는 작은 구멍이 될 수 있다. 사실 정부 통제가 힘들 정도로 대북지원사업이 왕성하다면 남북관계에서 좋은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혼란이 결국 통일의 길을 낸 것을 떠올릴 때 그렇다. 사업자 지정제도도 대북지원사업이 활성화되던 시기 나온 것일텐데 이 제도를 없애는데 통일부의 솔직한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의문이다. 
 
이번에 윤석열정부는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이후 대통령실의 여러 수석실에서 통일부에 관련 홍보영상물을 만들라는 요구가 빗발쳤다고 한다.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는데 공을 들이는 것은 대북심리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많이 회자될수록 북한정권을 자극하고, 차츰 북한주민들도 동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렇다면 대북지원사업도 그런 일환으로 해야 한다. 

서독은 동독에서 정치범 한명을 데리고 올 때마다 큰 비용을 지불했고, 이때마다 동독이 바라는 대로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프라이카우프로 불리는 ‘자유를 구입하는 방식’은 1962년부터 시작돼 28년간 이어졌다. 야당 시절엔 비판했지만 막상 정권을 잡게 된 콜 총리가 동방정책을 계승한 것은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콜 총리는 국내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동독에 대해 쓸 수 있는 강경정책을 다 사용하면서도 재정 지원만큼은 이어갔다. 

한반도 현실을 되돌아보면, 지금은 핵·미사일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북한이 남한의 인도적 지원도 거부하고 있는 시기이다. 남북대화가 부재하니 대북심리전은 필요악이다. 하지만 ‘5년 임기’ 이후까지 바라보는 정권이라면 김정은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분하는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내부 심리전은 늘 역풍을 불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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