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독립기관 선관위, 보안점검도 거부하더니 작년 해킹시도 4만건
독립성 방패 내세워 막강권력 누리더니 '고용 세습' 논란에 전격사퇴
여전히 '자체적 해결하겠다' 태도, 무소불위…검찰수사·외부감사 불가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선거 4원칙이란 현대 자유민주국가가 대의민주제, 선거제로 채택한 보통선거·평등선거·직접선거·비밀선거 4대 원칙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이 선거 4원칙 중 '비밀선거'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부실 투표 관리로 물의를 빚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최근 들어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또다른 논란이 예고됐다.

중앙선관위의 이번 사태가 좋게 말해 '자녀 특혜 채용'이지 '고용 세습'으로 해석된다. 소위 '철밥통'이라는 관료제의 폐해가 극에 달하면 어떤 결과로 드러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선관위는 헌법상 필수적인 '독립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선관위가 수행하는 선거 업무의 사회정치적 및 법적 의미와 기능을 고려하여 헌법이 보장한 '독립성'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평가받는 감사원이 정부의 모든 조직과 기관에 대해 '감사'라는 칼날을 들이밀지만, 선관위는 예외다.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의 지위 때문이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어디에서든 견제받거나 감시 받지 않는 선관위의 '무소불위' 행태다.

   
▲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2022년 10월 5일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선관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선관위에 대한 사이버 공격 시도 건수는 2020년 2만 5187건, 2021년 3만 1887건, 2022년 3만 9896건 일어났을 정도로 급등 추세다. 이중 상당수는 중국 또는 제3국을 경유한 북한의 해킹 시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렇게 외부의 해킹 시도가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거부하고 나섰다.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자체 점검하겠다며 거부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비판 여론이 더 일어나자 결국 국정원 및 한국인터넷진흥원의 합동 점검을 받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선관위의 선거 업무를 맡은 PC가 뚫리면 선거인 명부 유출을 비롯해 시스템 마비, 투개표 조작 등 치명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해킹 대응과 관련한 선관위의 무소불위식 행태가 뒤늦게나마 교정됐지만, 이번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의 경우 선관위가 내부적으로 자정 작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외부에 드러냈다.

지난 25일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전격 사퇴했지만, 어디에서도 견제 받지 않는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의 어떤 기관이더라도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조직은 대한민국 헌법상 있을 수 없다. 국민들의 신성한 주권인 투표권과 관련해 온갖 물의를 빚은 선관위에 대해 제 3 기관에 의한 검증과 외부 견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현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 문맥상, 현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식으로 읽힌다.

또한 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외부인사가 포함된 특별감사를 해서 선관위 자녀의 재직 현황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선관위 고위간부 자녀의 경력 채용은 6건에 달한다. 외부 감사에 따라 전수조사에 들어갈 경우 선관위 구성원 중 얼마나 많은 고용 세습 건이 발각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선관위의 셀프 조사 결과를 믿기 힘든 대목이다.

이미 선관위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벌이겠다는 '셀프조사'로는 해당 의혹을 벗기 어렵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31일 서울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최종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선관위는 다른 어떤 정부 조직보다도 구성원들의 공정성과 윤리의식이 더 요구된다. 헌법상 아무 곳에서도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기관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무처 직원들이 선관위 행정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거론된다.

선관위가 보도자료에서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앞서 소쿠리로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지를 관리해 부실 논란을 빚은 지난해 3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당시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사퇴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그 이후 선관위가 크게 달라진건 없다. 선관위는 그 후 자체 감사를 통해 일부 간부들을 징계했으나, 감사원 감사는 거부하고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현대 자유민주국가에서 선거는 대의제 하에서 국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유일하고도 본질적인 수단이며, 그 제도적 장치로서 선관위는 가장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선관위 내부 역랑에만 맡기기에 이미 추락한 불신의 골이 깊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선관위의 총체적 난맥상은 '부모 찬스' 고용세습 뿐만 아니라 부실 선거 관리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 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세습 연루자들은 4촌 이내 친족이 직무 관련자인 경우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선관위 내부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서 선관위의 진상을 밝히고 불법 여부를 가려야 할 시점이다.

선관위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불가침 성역이 될 수 없다. 자업자득이다. 불법, 불공정, 부실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헌법정신에 따라 철저히 개혁하고, 조직 구성원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하지 않도록 송두리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