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타인과의 통화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한 경우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을 두고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할 경우, 재판 등의 증명 과정에서 진실 파악이 어려워지는 만큼 반발이 커 국회 문턱을 넘진 못했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피프티피프티의 소속사 통수 사건이 연예계에서 큰 파장을 부르며 논란이 확산되자, 녹취에 대한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1년 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인 발의됐을 때는 삼성 갤럭시폰 불매 여론까지 나오며, 삼성전자가 의문의 1패를 당했던 반면, 최근 피프티피프티 논란에는 소속사 대표의 녹취록이 공개되며 갤럭시폰의 중요성이 부각돼 삼성전자가 의문의 1승을 거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녹음을 하는 이유는 결국 그로 인해 취할 수 있는 이득이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행여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녹음을 하는데 이 역시 결국 개인의 불리함과 억울함을 호소할 증거 수집이라는 목적이 있다. 

다만 녹취를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증거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녹취 안에 주장하고 싶은 부분이 명확하게 담겨 있어도 증거 능력이 없는 녹취는 불법으로 간주돼 제출조차 할 수 없고, 오히려 처벌을 받게 된다. 

녹취 문제가 되는 사례는 이혼 소송이 대표적이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 경우 배우자의 외도가 명확함에도 오히려 불법 녹취로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불법이 아닌 경우는 녹음 당사자 본인이 대화 당사자여야 한다는 것과 녹음 이외에 범죄 행위를 밝힐 수단이 없을 때 정도다. 

그렇다면 대화 당사자가 녹음한다면 무조건 증거 능력이 인정돼야 할까? 사실 이 부분에 있어 논란의 문제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한 경우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사회 이슈를 보면 이러한 논란이 있을 만한 사건이 있다. 바로 LG 오너가의 지분 상속 분쟁이다. 당시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재산 중 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광모 회장이 상속받았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세 모녀가 손을 잡고 소송을 제기했다. LG그룹 내에선 창업 75년 만에 승계 전통에 흠이 가는 사건이었다.

지난 18일 재산 분할 관련 ‘상속회복청구’ 첫 재판이 진행됐는데 세 모녀 측에서는 “피고의 기망행위가 있었으며, 원고들이 속아 상속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입증할 증거로 가족 간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녹취록이 방대해 사건 관련 내용 중 일부만 발췌해 제출하겠다고 한다.

이는 녹취록이 없는 입장에선 오히려 매우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화의 일부분만으로는 전체 맥락을 오해할 수 있고, 녹취한 자의 의도에 의해 편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를 시청할 때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들을 많이 나온다. 이는 짜깁기를 통해 순간순간을 캡쳐한 장면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 경우 사실과 왜곡된 모습을 전달 받은 이들은 오해를 할 수밖에 없다.

언론계에서도 간혹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 대표나 고위 임원 인터뷰 시 “앞으로 투자 계획이 있나?” 라는 질문에 “있다”라고 하면 기사에 당장 내일 투자한다고 기사화되는 경우다.

제조업의 경우 투자는 기업 미래를 담은 중요한 결정으로, 투자를 하지 않으면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앞으로 투자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투자는 없다라고 할 회사 관계자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으로’라는 말을 빼고 당장 투자한다고 기사화하고, 우린 정당하게 인터뷰한 내용을 썼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녹음을 하는 사람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 사실 가족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 가족 간 대화를 녹음했다는 것은 이미 어떤 목적을 갖고 대화를 시도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대화를 유도했다면? 그리고 그 대화 부분만 발췌해 증거로 제출한다면? 상대방 입장에선 이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구광모 회장 측이 녹취록 전체를 공개하라는 것은 이러한 우려를 사전 차단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가족 간 대화를 녹음했다는 것부터 이번 소송을 사전에 설계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한 기업에서 사내에서 말썽을 일으킨 직원을 권고 사직을 내보내려 할 때, 변호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퇴사하겠다는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한다. 실제 자동차 업계 한 기업에서는 그렇게 대화를 유도해 녹음을 했었다는 사례를 듣기도 했다.

75년 간 이어온 LG의 승계 전통이 깨진 것은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어차피 못 지킬 거라면, 깔끔하게 법원에서 가려야 할 문제다. 다만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화를 녹음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피해는 결국 녹음파일을 공개하거나 유출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하물며 LG라는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이 달린 사안이다. 가족 간의 대화라 해도 변호인단만 청취한다면 문제될 이유가 없다. 

녹취의 순기능이 악용되는 사례가 없길 바랄 뿐이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