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육사에서 철거...군의 역사 무지의 소치
'전향'의 의미도 없고 이유도 없는 일에 대한 소모적 논쟁 언제까지?
   
▲ 이석원 정치사회부장
[미디어펜=이석원 정치사회부장] 홍범도 장군이 소련의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서 흉상을 치우겠다는 군의 발상은 편협하다. 아니 편협하다기보다는 이념의 역사에 무지한 발상이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해서 그것을 충분히 기릴 수 있는 위치로 옮기겠다”는 것은 그간 홍범도 장군과 관련한 역사나 이념의 논쟁에서 이론 부족으로 수세에 몰리자 그야말로 궁색하고 치졸해진 결과다.

군이 당초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에 들이댔던 ‘자’는 ‘소련 공산당 이력’과 ‘자유시 참변 관여설’ 때문이다. 한반도를 전쟁에 휘몰아 넣었던 소련 공산당원에게 육사 생도들이 경례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또 홍 장군이 이른바 ‘자유시 참변’, 소련에 의해 자유시에 주둔했던 독립군들이 학살당한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은 그의 독립운동가 경력을 말살하자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런데 국방부 대변인 기자 브리핑 때 기자들의 항의성 질문에 대응할 논리를 못 찾아 헤맨 후 슬그머니 ‘자유시 참변 관여설’은 삼켜버리고 “독립운동의 공로는 인정한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역사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근거가 없는 일을 어딘가에서 주워듣고는 늘어놓다가 아니다 싶으니 “그건 아니고” 식으로 발을 뺀 것이다. 현재까지 역사학계의 정설은, 홍 장군이 속한 독립군 부대가 러시아공산당 극동국측의 무장해제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래서 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홍범도는 김일성의 배후 조종자인 소련의 공산당원’이라는 논리는 역사적으로 맞을까? 다분히 어불성설이다.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원이 된 것은 1927년. 소련에 입국해 코민테른 등의 활동을 했던 것은 레닌 집권기였지만, 레닌 사후 1922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스탈린 치하에서 소련 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했으니 홍 장군은 스탈린의 공산당원이 된 것은 맞다.

하지만 스탈린이 독재자이긴 했어도 홍 장군이 입당할 당시 소련 공산당은 김일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홍 장군 입당 당시 김일성은 15살이다. 물론 소련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는 동안도 소련은 ‘남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도해서 만들어진 소련의 공산당은 세계 최초의 공산당이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공산당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산주의 이념과 이론에 근거했다고는 하지만 이론으로만 따지면 당시 유럽 대부분 국가들도 공산주의에 경도돼 있었다. 1919년에는 미국에서도 공산당이 정식 정당으로 등록했고, 대통령 후보도 꾸준히 냈다.

다시 말해서 홍 장군 생전의 소련 공산당은 자유 진영의 적도, 더군다나 일본 식민지배 하의 조선의 적도 아니었다. 정치 외교적 이해관계는 다소 복잡했다 하더라도 당시 소련은 유럽의 반파시즘, 반나치즘 연대의 한 축이었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과 동맹이자 같은 편이었다.

그리고 최근 국민의힘에서 제기한 ‘전향’ 문제. 홍범도 장군은 나중에도 공산주의에서 전향하지 않았다는 논리. 이것도 말이 안 된다. 홍 장군은 1943년 사망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산주의에서의 전향이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시기다. 즉, 식민지 조선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의 이념 대립이 첨예하지 않았던 시기이니 ‘전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그 시기 나치즘이나 파시즘에서의 ‘전향’이라면 모를까. 홍 장군이 생전 소련이 8년여 후 김일성을 내세워서 해방된 조국을 전쟁의 포화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계시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1943년 이전 홍 장군의 ‘전향’이라는 것은 발상 자체가 비논리다.

   
▲ 국방부 앞에 놓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사진=연합뉴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서 소환되는 또 다른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의 한국 전쟁 전 남로당 활동은 이미 잘 알려진 바. 홍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 남로당 행적에 대해 문제 제기하자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다시 ‘전향’의 문제를 거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전향해 한국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은 물론 이후 20여 년 집권하는 동안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당연하다. 남로당 군사 총책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공적을 없던 일로 하면 안 되는 거 맞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굳이 홍 장군의 ‘비전향’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 고려해야 하는 점은,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은 남침과 아무 상관이 없는 연합국 일원의 공산당이었고, 박 전 대통령의 남로당은 실질적으로 김일성의 영향권에 있었고, 또 연합국의 위치가 아닌 미국의 적대 진영으로서의 소련, 특히 김일성과의 남침을 공유하던 소련의 영향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박 전 대통령은 ‘전향’을 하지 않았으면 개인사는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지만, 홍 장군의 경우는 앞선 언급대로 ‘전향’으로 인해 개인사든, 한국의 독립운동사든,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무의미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홍 장군을 놓고 “왜 전향을 하지 않은 것이냐?”를 따지는 게 얼마나 비논리인가? 게다가 1943년 당시 소련 땅이었던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한 홍 장군은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전향을 했어야 했을까?

소련 공산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홍 장군이 우리 군의 표상이 될 수 없다면, 어린이들을 위한 위인전에서 헬렌 켈러나 아인슈타인은 그 명단에서 빼야 한다. 그들도 공산주의자였거나 공산주의 이념을 옳다고 믿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공산주의자였던 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육자, 과학자로 알게 하면 어떻게 하나? 그들을 표본으로 교육이 이뤄지면 안 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일생을 스페인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빅토르 위고도 공산주의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동물 농장’은 공산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고, 현재 개봉해서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미국 FBI에서 규정한 공산주의자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청소년들이 보는 건 문제가 없나?

홍범도 장군에게 처음 훈장이 추서된 건 1962년이다.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1년이 조금 더 지난 후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홍범도 장군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왜 수여했을까? 추측건대 군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을 완화 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1991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홍 장군 유해를 봉환해오기 위한 첫 노력을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을 애써서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했고,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흉상을 세워 대한민국 육군의 정신이 한국의 독립운동에서 기인한다고 한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한 역대 정부에서 계속 노력해 이뤄낸 일을 부정해서 지금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기에는 이유도 명분도 역사성도 당위성도 너무 약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념은 중요하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처럼 이념의 대립이 지난 수십 년간 상존해온 사회에서 이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념이 우리 사회의 통합이나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해방 시기 좌우의 이념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시기에서 민중들의 삶에서는 이념보다 굶어 죽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허구한 날 이념 때문에 죽고 죽이는 아수라 지옥이 펼쳐져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해방된 새로운 세상,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제 나라에서 사람처럼 사는 것에 더 진력했다.

자칫 홍범도 장군 흉상의 문제가 ‘이념’이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는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한 시기 불필요한 오해가 오히려 한일 관계 개선의 큰 그림을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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