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해.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대사는 지난 2021년 9월 17일에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유명 밈이다. 
약 2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드라마는 전세계를 휩쓸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 중 극중 오징어게임을 만든 장본인이자 게임 참가자였던 오일남 노인의 남긴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바로 “이러다가는 다 죽어”라는 말이다.

이 유명 밈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거나 뭔가 안 좋은 일이 예상되는 등 부정적 상황에서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을 때 사용된다.
최근 산업계에서 이러한 오징어게임의 상황과 적절히 비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Program Provider)라 불리는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업계 간 관계다.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업계는 악어와 악어새 마냥 공존을 하는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최근 악화된 재정난으로 인해 양 업계가 첨예한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다수의 국내 유료방송사업자들은 24시간 콘텐츠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자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재정난이 해결되지 않아 골치를 썩고 있다. 

홈쇼핑업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코로나 당시 반짝했던 매출이 급감하며 생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요구하는 송출수수료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이제는 말 그대로 ‘헤어질 결심’을 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홈쇼핑업계의 매출 기반은 TV홈쇼핑이라는 말이 당연히 여겨지듯 TV 채널이었다. 좋은 번호대의 채널을 얻기 위해 경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 점차 아련한 추억이 돼가고 있다. 송출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선호도가 낮은 뒷 번호 배정을 택하거나 아예 편성에서 빠지기를 자처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다가는 다 죽어" 절규하는 오일남./사진=넷플릭스 화면 캡처


최근 현대홈쇼핑이 KT스카이라이프와 프로그램 송출계약을 종료하기로 했고, 롯데홈쇼핑 역시 다음 달부터 딜라이브 방송 송출을 중단할 방침이다. 이들의 갈등은 결국 ‘돈’이다. 
홈쇼핑업계는 송출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총 매출의 60%를 넘어서면서 쌓여온 감정이 폭발한 상황이다. 최근 매출이 급감하면서 송출수수료를 낮추길 바라고 있지만, 이마저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료방송사업자 입장에서는 송출수수료가 가장 큰 재원이기에 줄어드는 순간 재정난에 더욱 허덕일 수밖에 없다. 

홈쇼핑업계는 현재 일부 플랫폼에서는 수수료 매출보다 송출수수료가 더 큰 기형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만큼, 적자를 인내해가며 남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들은 방송 매출액의 13%를 방송 발전기금으로 납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별개로 방송산업 육성, 수익 사회환원, 중소기업 위무 편성(7개 홈쇼핑 평균 70% 이상), 고용인원 계획, 각종 시설 투자 계획 등 다양한 의무를 지고 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홈쇼핑 산업이 붕괴되면 방송산업 전반이 붕괴될 수 있다라는 우려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며 규제 완화와 송출수수료 등 비용 부담 절감을 주장하고 있는 처지다.
반면 중소형 유료방송사업자들은 방송 중단을 악용한다는 입장이다. 정부통제를 벗어나 플랫폼을 굴복시키려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홈쇼핑업계가 TV 대신 모바일방송 등으로 옮겨 여전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홈쇼핑업계가 TV 대신 인터넷 라방(라이브방송)이나 모바일방송 등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트렌드에 뒤쳐진 TV 때문이라는 점이다. 최근 젊은 세대는 TV와 친숙하지 않다. 주로 스마트폰 등을 통해 인터넷방송이나 넷플릭스 등 OTT를 활용해 여가를 즐긴다. 
TV 시청률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 PP들의 주요 고민인데, 이를 타개할 대응전략과 고민은 스스로 해야 한다. TV외에서 번 돈을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내라는 것에 대해 홈쇼핑업계는 강도질이라 표현한다. 

홈쇼핑업계가 TV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 고민하는 것처럼 유료방송사업자들도 줄어든 수익을 대신할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송출수수료에만 매달리다 보니 결국 이 같은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홈쇼핑업계도 힘든데 어려움을 서로 짊어지지 않는다면 파탄이 나는 것 외에 다른 결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현대홈쇼핑이나 롯데홈쇼핑과 같이 방송편성에서 스스로 빠지는 선택을 하는 업체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가 갈라지기 직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업계와의 사업자 재승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상파, 종편 등 굵직한 방송사업자를 관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된 역할은 첨단 기초산업부터 인공지능산업, 원자력, 항공우주산업 등을 맡고 있어 사실상 홈쇼핑 사업자에 대한 이해도도 없고 관심이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 TV홈쇼핑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사진=경기도 제공


결국 이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부처 기관에서 방관하고 일을 조율하지 못한 탓이 크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키운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싶다. 홈쇼핑업계의 아우성을 조금이라도 귀기울여줬다면 악어와 악어새가 헤어져야 할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았으리라 본다. 
심지어 갈등이 이렇게 커졌음에도 근본적 해결에 힘쓰기보다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고압적 태도를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중소형 유료방송사업자들은 물론 홈쇼핑업계도 TV 사업을 접어야할 판국이다. 
국정감사 때 소관 정부부처에 대한 책임소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홈쇼핑업계는 정말로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 PP들은 매달리기 바쁜 모양새다. 상대를 비방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영리단체가 아닌 이상 어느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적자 사업을 영위할 이유는 없다. 갑질이라고 억울해할 것도 아니다. 결국 매달리는 쪽이 을이니까. 홈쇼핑업체들은 자신들이 편성에서 밀리고 불이익을 받을 때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다고 오히려 불만을 제기한다. 결국 모두가 이 사태의 피해자이고 가해자인 셈이다.

최근 벌어진 작금의 사태는 줄어드는 인구와 젊은 세대의 TV 외면, 모바일과 인터넷 등을 통한 다양한 방송 생태계 조성 등이 주요인이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양 업계 모두의 잘못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들이 탄탄한 구매층을 이루고 있고, TV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 업계의 기본 프로세스는 유지될 수 있다. 
다만 서로 간 양보와 이해는 필요하다.

이번에 케이블 방송편성에서 빠지기로 결정한 한 홈쇼핑업체는 케이블방송과 송출수수료 협상을 이어가려고 노력했지만, 송출수수료를 기존 대비 0.3% 줄여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수수료 절감을 위해 뒷 번호대로 옮기려 했지만, 이마저도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결말은 결국 홈쇼핑업체의 헤어질 결심이었다.
이젠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쪽 다 피 보는 구조다. 서로가 살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같이 협조하고 양보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다 죽는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