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재단, ‘파편화된 세계 속 질서 위한 경쟁’ 글로벌 서베이 보고서
“美주도 신자유주의 결과 국부 키운 중러 복고주의”vs "역사의 순환"
“최악의 경우 미중 동시 쇠퇴·유럽연합 분열·러시아 불량국가로 전락”
“2차 세계대전 때 ‘대서양 헌장’처럼 ‘인도·태평양 헌장’ 제정 제언”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중 간 전략경쟁은 군사충돌없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향후 10년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시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왔다. 

우리나라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이 지난 1년동안 국내외 석학들을 대상으로 심층 기술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5일 세계정세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는 국제사회의 유명 학자 및 정책입안자 42명이 참여했다. 미국 전문가 8명, 유럽 10개국 전문가 15명,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10개국 전문가 19명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동북아만 놓고 봐도 한미일, 한중일, 한미중, 북중러의 4개 삼각형이 충돌하고 있을 만큼 국제질서가 분열과 파국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지 않으면 외교안보전략을 세우는데 오판이 클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아시아국가와 달리 북핵 문제로 미국과 안보동맹을 중시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더 복잡하다”며 이번 보고서 작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니어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현 국제정세는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결과 국부를 키운 중국과 러시아가 복고주의를 보이면서 시작된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런 한편, 중국의 부상은 역사의 순환이며, 미국의 쇠퇴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 무질서해진 세계정세의 원인은 중국의 공세적 부상과 국제규범에 도전하고 국제 관계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있다. 이와 함께 미국 리더십의 상대적 쇠퇴도 다음으로 꼽혔다.

각국의 전문가들은 미래의 국제 체제에 대해선 ‘자유주의적 다극 세계’(A liberal multipolar world)를 가장 많이 예측했다. 미중 간 경쟁이 자유민주주의 중견국들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지지에 따라 좌우되며 장기간 전개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음, ‘파편화된 다극 세계’(A fragmented multipolar world)를 맞을 경우 미중 양국이 동시에 쇠퇴하고, 유럽연합이 분열되며, 러시아는 불량국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뒤를 따랐다.  

세 번째로 많은 전망은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이 계속 관여하는 약한 양극 세계였고, 신냉전의 귀환에 대해선 대부분의 응답자가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미중 갈등. 정연주 제작, 사진합성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미중 간 경쟁은 정치·군사 분야보다 경제 분야에 집중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에 따라 미중 간 군사충돌 가능성과 관련해 응답자의 35%가 ‘실제 군사충돌없이 장기간 갈등 지속’을 예상했고, 20%는 ‘군사충돌없이 5~10년 내 갈등이 봉합되어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으며, 15%는 군사충돌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고, 10%의 응답자는 5년 내 군사충돌이 임박했다고 예상했다.

다만 미중 간 군사충돌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론 대만 해협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미국과 중국이 절대 협력하지 않을 분야는 신흥기술 분야라는 의견도 모아졌다. 또 많은 응답자들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이른바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미중 간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협력은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 내다봤고, 기후변화, 자연재해, 공중보건 영역 순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응답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보기구 설립에 대한 방안도 조사 내용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다수인 37%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형식의 느슨한 협의체가 적합하다고 답했다. 이어 30%는 한미일 또는 한미일-호주, 쿼드(Quad) 같은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선호했다. 

응답자의 17%는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및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판 나토(NATO)를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7.7%의 응답자는 현행의 미중 양자 중심의 체제 유지를 선호했다.

니어재단 보고서의 결론은 중견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포한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경쟁적 공생의 관리된 국제질서’로 전환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대국은 건설적인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중견국은 지역 및 글로벌 도전과제에 더 많은 부담을 지고 기여해야 하며, 글로벌 사우스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적극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연합국이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대서양 헌장’의 초안을 작성해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토대를 닦았듯이 이 보고서에 요약된 비전과 접근법을 담아 ‘인도·태평양 헌장’ 제정을 모색할 것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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