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방심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향을 잘못 들어서고 있는 분위기다. 갈팡질팡 헤매는 느낌이다.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보면 더욱 그렇다. 방심위는 “반말, 비속어, 속어 등 사용이 문제점이다”면서 방송 자체에 손을 대는 듯한 ‘권한’ 밖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케이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언어사용 실태조사’의 제목으로 뿌려진 ‘보도자료’는 가관이다. 방심위는 “어휘 사용상 문제점 중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이 가장 두드러져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은어의 반복적인 사용과 비표준어의 사용도 여러 번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표준어를 사용하라는 뜻이다.

“음 딜리셔스”라는 방송자막에 대해서 “딜리셔스는 영어 delicious를 차용한 것으로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외국어다. 성우에 의한 13개월 아기의 독백을 영어 표현으로 처리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PD처럼 개입하고 있다.

“몸매는 쏘 핫~ 성격은 쏘 쿨한 그녀들!”에 대해서 “쏘 핫은 멋지고 섹시하다는 의미이고, 쏘 쿨은 쩨쩨하지 않고 시원시원해 좋다는 의미로 적절한 우리말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 외국어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방심위 지적대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몸매는 멋지고 섹시해~ 성격은 쩨쩨하지 않고 시원시원해 좋은 그녀들!”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박만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방심위의 지적은 국어사전을 교과서로 방송을 제작하라는 틀에 박힌 ‘원론적 사고방식’의 표현이 아닐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스스로의 본질적 역할을 알지 못해서 곁가지에 불과한 ‘국어 사용 표현법’에 황당한 주장을 하는 듯 하다. PD 혹은 출연자가 감당할 일에 대해서 일일이 “감놔라 배놔라”할 입장은 아닌 것이다.

또 방심위는 “페이버릿 넘버” 자막을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진짜 물이 아이스 물이다. 아이스 물” 자막을 “진짜 물이 얼음물이다. 얼음물”로, “수진’S 생각” 자막을 “수진의 생각”으로 바꾸도록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방심위는 “~S는 영어의 소유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영어의 문법 요소를 빌려와 표기하였는데, 이는 우리말 조사 ‘의’로 표현할 수 있으며, 생략해도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다”고 언어학자처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언어학자가 해야할 일이고, 방심위의 본질적 역할에서는 거리가 먼 것이다.

‘드럽게’를 사용한 방송자막에 대해 지적한 내용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방심위는 “드럽게는 ‘어떤 정도가 심하거나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재미없네’를 수식하여 강조하고 있다. ‘드럽게’ 자체는 사전에서 비속어로 분류하고 있지 않지만, 표현을 저속하게 만든다고 판단되기에 ‘비속어’에 포함시켰다”고 국어사전까지 지적하고 있다.

따지겠다고 각오한다면, 방심위가 배포한 ‘오락프로그램 언어사용 실태조사’의 보도자료에는 국어문법에 어긋난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문장마다 ‘함.’ ‘있었음.’ ‘보임.’ 등으로 종결어미 ‘다’를 생략하고 있다. 국어에서 ‘다’는 문장의 가장 아름다운 종결자로 불리는데, 방심위 보도자료에서는 ‘다’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생략할 이유가 없는데 생략한 것이다.

방심위는 방송 자막들이 ‘저속하다. 표준어에 안 맞다. 맞춤법도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이러한 방심위 지적들이 방심위 역할에 전혀 안 맞고, 차원이 낮은 보도자료이고, 방심위 본연의 표준적 역할에서 ‘틀렸다’는 점수가 나올 듯하다. 특히, PD가 할 일을 방심위가 대신 하려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방심위 본연의 역할은 방송 프로그램 전체를 전체적으로 감시 감독하는 역할이다.

감독의 잣대는 ‘국어대사전’이 아니고,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인 것이다. 방심위는 “방송자막에 사용한 ‘뽕’은 의상에 넣는 ‘패드’를 속되게 일컫는 말임. 패드 자체도 외래어지만 마땅한 우리말이 없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좀 더 지나면 방심위는 “‘뽕’은 ‘가슴큰덮개’로 고칠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낼 지도 모르겠다. 또 방심위는 “어리버리는 어리바리의 잘못이다”고 지적하는데, 이러한 지적이 ‘어리바리’인 것이다. 왜냐면 방심위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시34] 핸드폰 쓰시면 안 된다고 그랬죠”에 대해서도 “[예시34]에서는 핸드폰을 쓰는 주체가 자신인데, 선어말어미 ‘시’를 사용하여 자신을 존대하고 있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너무 빠른 거 아니예요”에 대해서 “용언 ‘아니다’ 뒤에 어미 ‘에요’를 써야하는 데 서술격 조사의 활용형 ‘예요’를 썼음”라고 지적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표준어쓰기협회’ 수준으로 추락한 단면인 것이다. “急 개인기, 王 유치, 관심 無”에 대해서도 “한자 자막은 의미가 불분명해질 경우 등 꼭 필요한 경우에 한글과 병기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방심위가 지난달 29일 ‘시청자 사과 결정’을 내린 KBS-2TV 오작교 형제들, ‘경고’ 결정이 난 MBC-TV 무한도전도 이러한 맥락에 의한 결정으로 보인다. 오작교 형제들은 욕설과 저속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시청자 사과’ 결정이 났고, 무한도전은 ‘과도한 고성’과 ‘쫘악, 휘청, 날아치기, 끄아, 착 감기는구나’ 표현으로 ‘경고’ 결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