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사진은 ‘사진’ 이상의 사명을 갖고 있다. 움직이는 동영상 못지않게 사진은 기사 전체를 대변하는 말을 한다. 특히 각 신문마다 1면, 각 지면의 상단에 배치된 사진은 그 면의 전체적 얼굴을 결정한다. 1면 사진은 그 날 신문의 전체를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굵은 글씨의 기사 제목과 함께 사진은 기사의 몸통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각 신문마다 사진의 표정을 살펴보면, 재밌는 사실이 발견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어떤 신문은 웃고 있고, 다른 신문은 울고 있고, 어떤 신문은 긍정이면, 다른 신문은 부정이다. 각 신문마다 사진으로 기사를 조명하는 방향이 약간씩, 혹은 확연히 다르다. 사진은 법정에서 증인 역할처럼 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는 사진을 읽는 것도 기사 읽기에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사진의 돋보기 안경을 끼고, 10월 13일자 조선일보, 문화일보, 한겨레 신문을 꼼꼼히 살펴봤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FTA에 대해서 긍정적 보도를 하기 위해서 ‘미의회 오늘 한미 FTA 역사적 비준’의 제목과 함께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이 사진은 3면으로 바로 이어진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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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면 |
“FTA는 한미 동맹의 승리, 경재적으로도 윈윈”의 제목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두 손가락 제스쳐가 ‘동반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근엄하면서도 당찬 ‘긍정적’ 모습임에 틀림없다. 조선일보가 바라본 FTA의 얼굴이 오바마 사진에서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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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면 |
4면과 5면은 나경원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실렸다. 박원순의 특별인터뷰가 있었다. 보수의 적진 속에서 인터뷰한 진보측 서울시장의 얼굴은 증명사진처럼 큼지막하게 ‘찡그려서’ 나와있다. 누가 봐도 웃는 모습이 아니다. 의도성도 의심된다. 반면, 4면 아래에 나경원 의원은 여성으로서 작게 웃는 얼굴로 편집했다. 두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경원 의원의 사진이 작지만, 전체적 무게중심은 나 의원에게 가있다. 마치 박원순 후보는 골리앗처럼 ‘무섭게’ 묘사된 느낌이다. 사진이 정치적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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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5면_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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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
20면 국제면에 보면, 조선일보는 뉴질랜드 화물초 좌초 기사를 사진으로 처리했다. 한 여인이 기름으로 범벅된 해변에서 기름띠를 제거하는 모습은 가히 자연앞에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사진속에 사연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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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면 |
한겨레 1면 사진은 미군부대의 새 장갑차 100대다. 조선일보에서는 한쪽 귀퉁이에 밀려나서 천덕구러기 사진이었던 것이 한겨레에선 상석 대접을 받고 있다. 한겨레의 색채를 보여주는 사진인 셈이다. FTA 사진은 1면 아래에 사진없이 배치하고, MB의 나랏돈 사저 의혹, MB의 중국 견제 발언을 1면에 실으면서, 장갑차 100대와 함께 FTA를 ‘폭격 폭탄’의 이미지로 은근히 묘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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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면 |
3면은 더 재밌다. MB 사저 의혹과 관련해 굳게 잠긴 사저의 자물쇠를 실물크기로 실었다. 기사내용보다 더 큰 사이즈의 사진으로 자물쇠가 등장한 것이다. 누가 봐도 자물쇠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의 상징법처럼 ‘의혹’ ‘비리’ ‘담합’ ‘특혜’ 등 부정적 이미지를 상징한다. 우측 창틀에 하얀 봉투가 있다. 꼭 무슨 돈봉투처럼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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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면 |
6면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가 동시에 나온 사진을 보면 한겨레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나경원 의원은 국기에 대한 경례의 평범하고 무뚝뚝한 표정이고, 박원순 후보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악수하는 밝은 표정의 사진이다. 두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어서 박원순 후보측으로 사진의 무게중심이 기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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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면 |
문화일보 1면은 오바마 대통령과 MB가 한식당에서 환하게 미소짓는 장면을 실었다. FTA에 대해 긍정적 보도이다. 제목부터 “미국은 한미 FTA 비준 끝냈다”고 마침표를 선언하고 있다. 이 사진은 3면에서 웃는 미의회 사진으로 이어진다. 밝은 표정의 사진이 문화일보가 기대하는 FTA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겨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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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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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3면 |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사진도 나경원 의원에게 무게중심이 실려있다. 박근혜 후보와 나경원 의원이 나란히 서있고, 나경원 의원은 활짝 웃는 모습, 박근혜 대표는 근엄한 표정이다. 반면, 박원순 후보와 손학규 대표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손 대표는 손을 내린 채 방관자처럼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두 사진은 분명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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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에 실린 나경원 후보 |
제목도 그렇다. “박근혜 나경원 손 맞잡고 함께 좋은 정책 만들 것” VS “장화 신고 가락시장 방문 시장 되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장화의 이미지는 부정적 느낌이다. 또한 나경원 의원은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박원순 의원은 ‘시장이 되면...’이다. 서울시장으로서 나경원 의원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있는 기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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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에 실린 박원순 후보 |
20면 국제면에 월가 시위에 대한 사진이 실렸다. 한 흑인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해서 어떤 홈페이지를 읽는 도중에 지지자 숫자가 안경에 비친 사진이다. 시위에 대한 열정적인 뜻이 그대로 묘사된다. 붉은 물결, 더 나아가 곧 폭팔할 것 같은 시위의 느낌이 ‘안경의 충혈’ 그 이상으로 표현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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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