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의 내전도 사실상 종식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69)세가 사망하며 리비아의 42년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리비아 시민군 병사들은 물론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20일(현지시간) NTC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브릴 총리는 “오랫동안 이순간을 기다렸다”며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카다피와 함께 사망한 카다피의 넷째 아들 무타심의 시신도 공개됐다.

20일(현지시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마지막 거점 시르테에서 공격을 받아 숨진 뒤알자지라 방송이 카다피의 모습이라고 공개한 영상
▲20일(현지시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마지막 거점 시르테에서 공격을 받아 숨진 뒤
알자지라 방송이 카다피의 모습이라고 공개한 영상


지난 8월 23일 반군의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종적을 감춘 카다피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향 시르테서 강력하게 저항해왔다.

카다피는 최후의 은신처인 고향 시르테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카다피의 최후를 두고 목격자 증언들이 엇갈리고 있다. NTC군에 의해 살해됐는지 교전 중에 우발적으로 숨졌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의 내전도 사실상 종식했다. 과도정부군은 이날 북서지역에 있는 2구역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카다피 세력을 붕괴시켰다.

세계 정상들은 카다피 사망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 국민의 길고 고통스러운 장이 끝났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새 정부가 민주개혁을 계속 추진을 언급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카다피의 사망이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전망을 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김일성 주석 시절인 1974년에 리비아와 수교한 이래 1982년 친선협조동맹조약, 1984년 군사협력 의정서 등을 맺으면서 정치·군사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공고히해온 북한은 카다피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카다피의 죽음을 서방국가의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억제력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며 "아울러 외화벌이 루트로서 리비아의 중요성 때문에 NTC와 관계도 만들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