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1. 기업은행을 퇴직한 전직 직원 G씨. G씨는 동행 직원인 배우자(심사역), 입행동기(심사센터장, 지점장) 및 사모임 등을 통해 친분을 형성한 다수 임직원과 공모해 7년간 51건에 걸쳐 785억원의 부당대출을 받거나 알선했다. 부당대출에 관여한 임직원 대부분은 그 대가로 금품 및 골프 등 향응을 수수했다.
#2. 그런가하면 G씨는 본인소유 지식산업센터(은행 여신거래처)에 은행 점포를 입점(임대차)시키기 위해 은행 고위 임원에게 부정청탁을 했다. 실무진의 반대에도 해당 임원이 4차례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결국 점포를 입점시켰다. 이후 고위 임원 자녀는 G씨 소유 업체에 취업한 것처럼 가장해 2년여간 급여 명목의 금전을 수취했다.
#3. 영업점의 대출을 점검·심사해야 할 심사센터장 H씨는 실 대출자(실차주)와 공모해 실차주 관계사 대표를 자신의 처형으로 교체하고, 입행동기(영업점의 지점장)를 활용해 5건에 걸쳐 27억원의 부당대출을 신청하도록 했다. 이후 심사를 맡는 본인이 대출을 모두 승인해주는 대가로 차주사에게 처형 명의의 급여를 수령하고 법인카드도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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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원이 기업은행에서 발생한 이해관계자 부당대출을 조사한 결과, 그 규모가 약 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초 기업은행이 공시를 통해 밝힌 24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
금융감독원이 기업은행에서 발생한 이해관계자 부당대출을 조사한 결과, 그 규모가 약 9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초 기업은행이 공시를 통해 밝힌 240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금감원은 25일 오전 본원에서 이세훈 수석부원장 주재로 이 같은 내용의 이해관계자 부당거래 검사사례를 브리핑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권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금융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통제 강화'를 어젠다로 내걸고, 임직원 윤리의식 및 온정주의적 조직문화 등의 관행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는 국제 규범적으로도 이해상충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절차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은행감독준칙은 금융회사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이해관계자(대주주, 임원, 직원 및 이해관계자 가족 및 직간접적 이해관계자 등) 및 이해관계자 거래(신용공여, 용역거래, 자산 구매·판매, 공사·임대계약 등)를 폭넓게 정의하고, 내부통제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법 등 금융관련 법규에서는 이해관계자를 별도로 정의하지 않고, 대주주(배우자,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포함)에 대한 신용공여를 중심으로 규율하고 있다. 임직원 및 관련 이해관계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임직원 윤리·복무규정' 등 자체 내부통제 기준에 따르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은행들이 부당거래 방지의무를 선언적으로만 규정하다 보니,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이해관계자 부당거래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최근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 대한 검사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 및 그 배우자·친인척, 입행동기 및 사모임, 법무사 사무소 등 업무상 거래처와 연계된 다수의 이해상충 및 부당거래 사례를 대거 적발했다.
기업은행 사례의 경우 금감원 추산 결과, 실제 58건, 882억원의 부당대출이 있었다. 부당대출 발생 기간은 2017년 6월부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은행이 지난 1월 9일 자체 공시한 239억 5000만원과 매우 대비된다. 기업은행은 당시 공시를 내놓으면서 사고 발생기간으로 2022년 6월 17일부터 2024년 11월 22일까지라고 게재한 바 있다.
당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8건 882억원 중 51건 785억원은 기업은행 퇴직자 G씨 관련 부당대출이었다. G씨는 약 14년간 기업은행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G씨는 입행 동기, 전·현직 임직원 사모임, 거래처 관계 등에서 친분을 쌓은 28명의 기업은행 관계자들과 공모해 부당이득을 취했다. 특히 최대 이해관계자인 G씨의 배우자는 여전히 기업은행 팀장(심사역)으로 근무 중이었다. 이들은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대출관련 증빙, 자기자금 부담여력 등을 허위 작성하고, 심사역 등은 이를 공모·묵인해 51건, 785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았다.
일부 사례를 살펴보면, G씨는 갖가지 방법을 통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 우선 G씨는 허위 증빙 서류를 통해 토지 매입 목적의 쪼개기 부당대출을 받았는데, 2018년 9월부터 11월까지 총 64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매입한 토지에는 지식산업센터를 세웠는데, G씨가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거래처 일시 차입금을 본인 법인의 자금력으로 가장했다. 이를 알고 있는 G씨의 배우자(심사역)는 사업검토서 상 자금조달계획 등을 허위 작성해 부당대출을 공모했다. 이를 통해 지난 2020년 9월 59억원의 자금을 대출받았다.
G씨는 미분양 상가 부당대출도 알선했다. 그는 경기 시흥 소재 미분양상가 25호실을 보유한 모 건설사의 청탁을 받아 심사센터장 및 지점장급 등의 입행동기에게 알선했다. 이들 입행동기들은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상가 구입자금대출로 216억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G씨는 대출알선 대가로 건설사에게 12억원을 수수했고, 심사센터장은 G씨에게 현금 2억원 및 차명법인 지분 20%를 수수했다.
특히 이날 발표에서 기업은행의 내부통제 미작동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관련 최초 비위행위 제보를 받은 후 9~10월 자체조사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행은 부당대출이 다수 지점 및 임직원들까지 연루됐다는 점을 인지했다. 하지만 금품수수 등을 조사한 부서가 관련 내용을 부당대출을 조사한 부서에 전달하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금감원 보고 지연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부당대출 조사부서는 지난해 11월 24일 '사고 지점 검토결과'라는 별도 문건을 마련해 사고를 은폐·축소했다. 금감원 보고는 한창 후인 12월 26일이 돼서야 했다. 특히 금감원이 이 사고를 인지해 본격 검사 중인 가운데, 지난 1월 16일에는 부서장 지시로 부당대출을 조사한 부서 직원 6명이 271개 파일(2024년 9~10월 자체조사 자료) 및 사내 메신저 기록도 삭제했다. 조직적으로 검사를 방해한 셈이다.
금감원은 아직 검사결과를 정리 중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위법·부당행위에 엄정 제재를 펼치고 범죄혐의 수사기관에 통보·협조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 수석부원장은 "금감원은 검사를 통해 확인된 부당대출 등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엄정 제재할 예정"이라며 "관련 임직원 등의 범죄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하고, 명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 1~2월 관련자를 고발·통보한 상태다.
또 "부당거래 사례를 분석해 금융권의 이해상충 방지 등 관련 내부통제 실태를 2분기까지 점검하고, 미흡사항에 대해서는 신속히 개선·보완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금융위원회와 함께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도 검토할 방침이다. 이 수석부원장은 "금융위와의 협의를 거쳐 금융회사 등의 이해상충 방지 등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며 "책무구조도 및 준법제보 활성화 등 그간 금융감독당국이 추진해 온 제도개선 사항의 조속한 정착을 통해 이해관계자 등과의 부당한 거래가 사전에 예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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