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롯데손해보험이 5년 전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와 관련해 8일 콜옵션을 행사하며 공식 상환절차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롯데손보의 지급여력비율(킥스·K-ICS) 저하를 이유로 후순위채 상환 반대의 뜻을 표명했는데, 롯데손보는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날 콜옵션을 행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법규에 따라 필요사항을 엄정 조치할 것임을 시사했다.
금감원은 8일 오후 본원 브리핑실에서 롯데손보의 후순위채 조기상환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발표를 맡은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자본확충계획이나 회사측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해듣지 못했다"며 "자본버퍼로 사용해야 할 후순위채를 상환하겠다는 회사 측 계획에 대해 당국으로서 굉장한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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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손해보험이 5년 전 발행한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와 관련해 8일 콜옵션을 행사하며 공식 상환절차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롯데손보의 지급여력비율(킥스·K-ICS) 저하를 이유로 후순위채 상환 반대의 뜻을 표명했는데, 롯데손보는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날 콜옵션 행사로 공식 상환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며, 법규에 따라 필요사항을 엄정 조치하라고 당부했다./사진=롯데손해보험 제공 |
이어 "(후순위채를) 상환하게 되면 결국 보험사로서의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롯데손보 측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이 확인되지 않으면 당국으로서는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부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복현 금감원장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원장은 이날 오전 본원에서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롯데손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원장은 "법규에 따라 필요사항을 엄정하게 조치하면서, 막연한 불안심리 확산에 대비해 금융시장 안정에도 만전을 기하라"면서 "롯데손보가 계약자 보호에 필요한 재무건전성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평가하고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건전성 불충족에도 콜옵션 행사
롯데손보는 지난 2020년 5월 7일 발행한 후순위채 '롯데손해보험 8(후)'의 콜옵션을 이날 행사했다. '채권자 권리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다.
통상 후순위채는 보험회사의 재무상황 악화 시 보험계약자 및 일반채권자 보호에 문제가 없도록 손실흡수 명목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에 후순위채를 타 채권보다 조기에 상환하려면 감독당국이 요구하는 '채무 상환 후 킥스비율 150% 이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50% 미만일 경우 조기상환을 위해 타 후순위채 등으로 차환해야 한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말 킥스 비율이 154.59%로 조건에 충족한다고 공시했다. 당국 기준대로라면 후순위채를 상환할 수 있다. 하지만 롯데손보가 최근 제출한 후순위채 조기상환 신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킥스 비율은 150%에도 채 못 미친다. 더욱이 롯데손보가 공시한 지난해 킥스비율(154.59%)에 대해 금감원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에 대해 회사에 유리한 예외모형을 적용한 경우"라며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금감원은 원칙모형을 적용한 롯데손보의 킥스비율이 지난해 말 127.4%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2월 후순위채 발행 철회 배경 놓고 양측 기싸움
당국은 롯데손보가 지난 2월 후순위채 발행을 끝내 철회했던 배경으로 꼽히는 '증권신고서 재무내용 불충실 기재'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가결산 수치가 내부적으로 산출됐음에도, 지난해 3분기 수치를 인용해 올해 1월 31일 증권신고서로 제출했다. 특히 무·저해지보험 해지율에 대해 회사에 유리한 예외모형만 기재하고, 대주주 인수계약서상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위험 등을 기재하지 않았다. 이후 후순위채 발행예정일(2월12일) 하루 뒤인 13일에 잠정실적을 공시했다.
이에 금감원은 기재누락 사항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으로 판단하고, 회사에 관련 투자위험을 기재토록 지도했다. 끝내 롯데손보는 지난 2월5일 공시한 증권신고서를 자진 철회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손보 측은 "신규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기존 채권 상환을 준비해왔으나, 금융감독원이 회사의 후순위채 발행을 보류시킴에 따라 발행을 철회한 바 있다"며 "당시 감독당국은 후순위채발행 수요예측 전날 정정신고를 요구하는 등 발행 조건을 강화해 실질적인 발행이 어렵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또 "차환 발행 철회로 인해 현 상황에서 콜옵션 행사가 일부 감독규정상 요건(상환 후 킥스비율)에 소폭 부합하지 않자, 회사는 해당 규정에 대한 비조치의견서를 금융감독원에 요청했다"면서 "감독당국은 지난 7일 불승인 결정을 내리고 콜옵션 행사를 하지 말도록 회사에 통보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당국 승인 없는 후순위채 조기상환, 보험업법 위반"
그럼에도 롯데손보는 이날 콜옵션을 행사해 후순위채 조기상환에 나섰다. 롯데손보 측은 "금융감독원의 결정에 따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 보호 △금융시장 안정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콜옵션을 행사해 후순위채를 상환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채권자들과 상환을 위한 실무 절차를 거치는 중이며, 수일 내 상환 절차가 완료될 예정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본 상환은 회사의 고유자금인 일반계정 자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계약자 자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며 "계약자 보호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수석부원장은 "후순위채 조기 상환을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의 승인이 필요하나, 롯데손보는 보험업감독규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금감원 승인이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지만 법령상 기재된 항목을 무시하고 롯데손보가 상환을 강행했다는 설명이다.
또 비조치의견서 요청에 불응했다는 롯데손보 측의 주장에 대해 "비조치의견서를 거부해서 문제가 초래됐다는 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법령 요건에 충족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감독당국이 어떤 의견을 주더라도 법 위반 상태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롯데손보가 후순위채를 상환할 수 있는 법적요건(킥스)부터 충족하는 게 우선 아니냐는 시각이다.
아울러 "회사측은 회사 고유자금인 일반계정 자금으로 상환하므로 계약자 자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계약자 보호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건전성이 저하된 상황에서 계약자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일반계정 자산으로 후순위채를 먼저 상환하는 것은 계약자 보호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관련 법규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이날 상환에 나선 후순위채권 인수계약서에도 '보험업감독규정 제7-10조 제5항'의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채권을 중도상환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롯데손보가 당국 및 시장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조기상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유감"이라며 "롯데손보가 계약자 및 채권자 보호에 필요한 적정 재무요건을 회복할 수 있을지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으며, 롯데손보 재무상황에 대한 평가 결과가 확정되는대로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신속히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또 "롯데손보 측이 당기 수익 극대화를 통한 주주이익 보다 필요한 자본확충 노력을 조속히 추진해 투자자·계약자 보호를 우선시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당국은 롯데손보의 일방적 콜옵션 행사에 대해 "개별 회사의 건전성 이슈에 불과한 만큼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당분간 금융시장 및 채권시장을 밀착 모니터링하고, 특이사항 발생 시에는 시장안정조치로 즉각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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