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온실가스 감축목표 위해 2035년 내연차 판매 제한 검토"
업계 "정부 계획, 현실성 낮아…중국 전기차 국내 장악 우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정부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공식 검토하며 전동화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거시적 목표에는 이견이 없지만, 속도전에 치우친 정책이 산업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중소 부품업체를 중심으로 전환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 불안이 커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경기 광명 기아 오토랜드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토론회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기존 계획보다 최소 5년 이상 앞당겨진 것이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내연기관차 판매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지난 19일 공개토론회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지금의 2배 속도로 줄여나가야 한다"면서 "대략 2035년이나 2040년 내연차 생산을 중단하는 결정도 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 기아 EV5 충전하는 모습./사진=김연지 기자


◆ 인프라·시장 준비 미흡…"전환 속도보다 체질 개선이 우선"

정부는 이번 조치가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제적 흐름에 발맞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와 2030년까지 420만 대 친환경차 보급, 충전 인프라 확충 등 중장기 로드맵과 연계해 산업 구조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데 이어 일본·미국도 유사한 목표를 제시하면서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속도전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충전소·보조금·수요 기반 등 필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정을 급하게 앞당기면 산업 전반의 연착륙이 어렵다는 것이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는 정부가 제시한 2035년 무공해차 840만 대 보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차량의 90% 이상을 전기차나 수소차로 판매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수송 부문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과 규제 압박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에 내수시장을 내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저가 모델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는 이미 유럽과 동남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국내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브랜드들이 속속 진입하며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급격한 속도전은 국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산업 경쟁력과 생존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전환 준비 없이 규제만 강화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수출뿐 아니라 내수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부품부터 완성차까지…공급망 전반 충격 불가피

전동화 전환이 빨라질수록 산업 전반의 구조적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생산체계는 대규모 개편이 불가피하며, 조립라인 교체와 설비 전환에만 수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숙련 인력 재교육과 고용 재배치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업계에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약 20~30% 적은 인력으로 생산이 가능해 신규 채용이 줄고 기존 인력이 유휴 인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특히 전동화 대응 여력이 취약한 완성차 업체들은 더욱 큰 압박을 받고 있다. 국내 중견 3사는 이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한국GM은 내연차만 생산·판매하고 있고, 르노코리아의 전기차 라인업은 세닉 1종뿐이다. KG모빌리티도 토레스EV·무쏘EV 등 2종에 그친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아이오닉·EV 시리즈 등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갖춰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국 비야디(BYD)·지커(Zeekr)·샤오펑(Xpeng) 등 글로벌 업체들이 속속 국내 시장 진입에 나서면서 경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시장 점유율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 높은 중국산 전기차에 내수 시장을 내줄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업계는 내연차 판매금지 시점을 2040년으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며 "계획보다 5년이 앞당겨지면서 업계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망 전반의 재편도 불가피하다. 엔진·변속기·배기 시스템 등 내연기관 부품 제조사는 판로 축소가 불가피하지만, 전기차용 부품으로 전환하기에는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 국내 부품기업의 95.6%가 중소·중견기업이며, 이 중 친환경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15~18%에 불과하다. 자금 조달과 기술 확보 모두에서 구조적 제약이 크고, 정부 지원 규모도 실제 필요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전동화는 부품업체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존립과 직결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대규모 구조조정과 폐업이 현실화하고, 이는 완성차 생산 차질과 국내 제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는 속도 경쟁에 앞서 산업 생태계를 지탱할 토대를 먼저 마련하고, 정부·완성차·부품업계가 공동 대응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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