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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
<의료계약의 특성과 자유시장의 범위>
1.자유계약의 이점
자유롭고 자발적인 계약은 계약 쌍방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어느 한쪽에게만 이익이고 다른 쪽에는 손해인 계약이라면 손해보는 쪽에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의료계약도 다를 것이 원칙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의사는 환자에게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는 의사에게 돈을 지불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본다.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받는 치료비가 작다면 의사는 환자를 받지 않을 것이고, 지불하는 치료비보다 받는 진료서비스의 가치가 작다면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약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발적이라면 국가가 의료계약에 대해서 관여할 이유가 없다. 다만 체결된 의료계약의 내용이 지켜지도록만 하면 될 것이다.
자유로운 계약이 허용된다면 시장이 등장한다.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것을 공급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기에 가격기구가 중요한 매개역할을 한다. 외과 진료에 대한 수요가 늘면 외과진료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외과진료를 제공하는 의사들의 숫자가 늘게 된다.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수요가 줄면 그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그들의 수입이 줄어 산부인과 진료의 공급의 줄어든다. 그렇게 해서 자유로운 계약과 가격기구로 이루어지는 자유시장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간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자원들이 점점 더 가치 높은 용도로 사용되어 나간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에는 한국버스노선번호와 한글표지판을 그대로 달고 다니는 버스들이 많다. 이제 그 버스들은 그곳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운송수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버스들은 무용지물이다. 아니 오히려 돈을 들여서 폐차를 해야만 한다. 한국의 버스주인들과 블라디보스톡의 운송업자가 자유로운 거래를 한 결과 우리에게는 골치덩어리인 중고버스가 없어서는 안되는 운송수단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일은 의료에서도 다르지 않다. 당장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몇시간의 수술을 통해서 살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의사에게 그 세 시간은 골프를 치거나 독서를 하는 세 시간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환자에게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환자가 다시 얻은 생명의 가치는 치료비보다 훨씬 크고, 의사가 받은 치료비는 그 세 시간 동안 진료를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서 누리는 만족의 가치보다 크다. 그렇지 않다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유계약과 자유시장은 가치를 창출해간다.
2. 의료서비스 시장의 특성과 계약의 불완전성에 대한 민법의 대응
그런데 그런 결론에는 몇 가지의 단서가 달려 있다. 계약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발적이었는가, 그리고 쌍방이 모두 상대방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의 여부이다. 강압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면 한쪽에게만 유리하고 다른 쪽에는 불리한 계약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거래를 통해서 가치가 창조되지 못한다. 그래서 계약을 강요하는 일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또 거래하는 서비스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약이 체결될 경우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을 경제학의 용어로는 비대칭정보라고 부른다. 비대칭정보가 문제되는 것은 잘 아는 쪽에서 상대방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해서 거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도 시장은 잘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계약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 것은 민법이다. 자유롭지 않은 계약, 그리고 잘못 알고 체결된 계약을 다루는 우리 민법의 조항들은 크게 보아 두 조항이다. 제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110조에는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제104조 중에서 의료와 특별히 관련을 갖는 부분은 궁박이다. 의사가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응급환자에게 전재산을 내놓지 않으면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계약을 요구한다고 해보자. 환자의 입장에서는 죽는 것보다는 전재산을 내놓는 것이 나을테니까 전재산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궁박한 상황이고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의 민법은 그런 행위를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한다.
어떻게 보면 궁박한 상황에서의 계약도 자발적인 행위의 현식은 갖추고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무엇을 강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계약은 자유계약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 자유계약에서도 위협은 허용된다. 즉 내가 제시하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식의 위협이다.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궁박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조건의 내용이 전재산을 내놓으라는 것이어서 그렇지 어쨌든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박한 상황에서의 계약을 자유롭다고만 보지 않는 이유는 위협의 성격에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계약체결 과정에서의 위협은 새로운 가치의 창출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위협이다. 반면 궁박한 상황에서의 위협은 이미 만들어진 가치(생명)가 파괴되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위협이다.
칼을 들이대고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가치의 파괴를 위협수단으로 하고 있다. 기존 가치의 파괴를 위협수단으로 해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계약이 새로운 가치의 창조수단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의 계약은 특별히 공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사기 조항은 상대방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서 체결한 계약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계약 역시 쌍방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한쪽에게만 이롭고 다른 쪽에는 이롭지 않다. 민법은 그런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런 장치들은 단순히 환자들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의료시장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면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고 의료시장은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런 장치들은 의사들 자신에게도 이익이다. 계약의 자발성을 보장하기 위한 이런 장치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롭다.
3. 비대칭정보의 문제와 청구권 경합
민법이 규정하는 궁박과 사기 조항을 의료행위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함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의료행위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비대칭 정보의 문제는 사기 조항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자유로운 계약이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또 의료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는 일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계약서라는 것은 계약 쌍방의 의무와 권리가 명시되어야 하는데, 각각의 의료계약에 있어서 의사와 환자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느 쪽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더욱 불거져 나온다. 의료행위가 의사와 환자간의 자유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상태에서 의료사고가 났다고 해보자. 의사 측에서 의료사고를 내겠다고 제안한 적도 없고 환자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적이 없을 테니까 의료사고는 계약불이행이나 불완전 이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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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획일적인 의료수가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수가와 의료광고 규제를 풀어서 의사들의 경쟁을 촉진하고, 환자들이 질좋은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의료법인 자회사의 영리법인 허용과 원격진료 허용방침에 대해 반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때 의사는 계약의 무엇을 위반한 것인가. 의사는 치료를 해주겠다고 했고 환자는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의사는 분명 치료를 `잘` 해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가 `잘`인가. 진료행위시마다 계약서를 쓰지도 않지만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어느 정도가 `잘` 치료하는 것인지를 계약서에 써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기껏 써 놓는다면 최선의 노력을 한다든가, 업계의 관행을 따른다든가, 신의성실을 다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의료 거래를 계약이라고 보더라도 계약의 내용이 분명치 않은 계약이 된다. 자유계약을 옹호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계약의 쌍방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체결한 계약이라면 그 계약이 쌍방 모두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어진다. 결국 계약을 집행할 이유도, 정당성도 사라진다.
그래서 의료사고는 계약의 위반이나 계약의 불완전 이행이 아니라 불법행위로 다루어지게 된다. 계약책임이 당사자 간에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게 하기 위한 장치라면 불법행위 책임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따라야 하는 규범을 지키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대개 불법행위책임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우리 판례가 택하고 있는 청구권 경합설 때문이다. 청구권경합설은 피해자가 계약책임과 불법행위 책임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의료사고의 경우 계약불이행에 따른 책임보다는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것이 피해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대개는 그쪽을 택한다.
의료사고를 계약의 불완전이행이 아니라 불법행위로 다룬다는 것은 치료에 있어서 의사가 어느 정도의 주의의무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 당사자인 의사와 환자간의 합의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인 기준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법원도 의사가 기울여야 하는 주의의무의 수준은 당해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고려되어서는 안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판 96다5933).
의사는 당시의 의료기술 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계약은 법원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업계의 관행 같은 것이 적절한 주의의무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당사자간의 합의가 아니라 제3자인 법원이 정하는 수준 또는 업계의 다른 의사들이 하는 수준정도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당사자간의 합의가 개입될 여지는 없어져 버린다. 의료계약을 하기도 어렵지만, 현재의 법원판결 경향 하에서는 계약을 하더라도 그 계약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계약이 의미를 가지려면 계약위반에 대한 벌칙이나 배상이 그 계약내용대로 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위반인지의 문제가 당사자들의 합의된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면 계약 그 자체도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리고 한걸음 더 나가면 계약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런 식의 대응은 지금 당장의 상황만을 놓고 판단하면 어느 정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의사들이 어느 정도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환자와 의사간에 계약으로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소비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 수 있다.
4. 주의수준의 획일화, 의료수가 규제, 의료시장의 왜곡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진료행위시의 주의수준도 치료비의 수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어떤 병원은 하루에 환자 대여섯명만 받는 대신 매우 높은 진료비를 받을 수 있다. 그 때 환자가 의사에게 요구하는 주의수준은 매우 높을 것이다. 정확히 찍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환자도 의사도 모두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높은 주의 수준에 합의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의사가 합치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높은 주의수준을 공급받는다는 계약이 성립한 것이다. 반면 저가 정책을 펴는 병원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백명도 넘는 환자를 받으면서 진료비는 낮게 책정하는 병원들을 말한다. 그런 병원들로부터 환자들이 기대하는 서비스의 수준은 매우 낮을 것이며 주의의 수준 역시 낮을 것이다. 이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의사와 환자간에 낮은 수준의 서비스와 낮은 주의수준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음을 뜻한다. 싼 게 비지떡 아닌가. 환자도 의사도 모두 싼 진료행위에 동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같은 주의수준을 기준으로 과실여부를 따진다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의사는 값에 상응하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의사와 환자간에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법원이 모든 병원과 의사에 대해서 동일한 수준의 주의의무를 요구한다면 값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해로운 제도다. 저가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저가의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저가의 서비스란 주의수준도 낮다는 말이다. 의료과실을 업계의 평균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게 되면 그만큼 의료서비스의 다양성은 상실되고 모든 의사와 모든 병원이 고가의 의료서비스만을 공급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고 의료서비스의 고가화는 가격과 무관하게 모든 병원과 모든 의사에게 동일한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법원의 판결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의료수가규제를 하는 나라에서는 다른 형태의 의료시장 왜곡현상이 나타난다. 법원이 높은 주의수준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진료비는 자유롭게 올리지 못하다 보니 아예 그런 행위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큰 주의가 필요하지 않은 진료과목 또는 의료사고가 잘 나지 않는 진료과목으로 의사들이 옮겨가게 된다. 내과, 외과의사는 줄어들고 이비인후과, 정신과 등의 의사 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격규제도 품질규제(획일적 주의수준 적용)도 모두 거래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해친다. 의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쫓는 사람이다. 의료수가를 규제하면 그 값에 맞는 수준으로 서비스의 질을 낮추려고 한다. 값은 규제하면서 서비스의 질이나 주의수준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지 못하게 하면 아예 그런 진료행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환자 또는 소비자 자신들에게 손해다.
5. 올바른 대응: 자유로운 계약의 회복
오히려 규제를 하기보다는 규제를 풀어서 의사들간의 경쟁을 시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다. 의료계약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은 의료행위의 내용을 환자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는 평판 쌓기 노력이 그것이다. 소비자들이 비록 의료행위에 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병원이 관절염을 잘 고친다든가 어느 의사가 심장수술에 권위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평판의 대부분은 사실이다.
그런 평판은 의사 자신에게 굉장한 재산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일단 평판이 형성되면 의사나 병원은 그 평판에 걸맞는 진료행위를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평판을 이용해서 단기적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평판에 걸맞는 진료를 함으로써 장기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와 병원들은 각자 나름의 평판을 쌓기 위해 진료를 하게 될 것이며 소비자를 속이는 일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사들간의 경쟁을 촉진하되 의사들과 환자들에게 넓은 선택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료기술의 실험적 도입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의료수가규제를 풀어야 한다. 수가규제가 건강보험 제도의 일부여야 할 이유는 없다. 건강보험을 이유로 수가를 묶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의 부담을 의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수가는 의사들이 원하는 대로 책정하게 해야 한다. 그 수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건강보험공단이 거래를 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래야만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도 나오고 또 아주 저가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병의원도 나올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자신의 소득수준에 걸맞는 병원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법원의 판결도 중요하다. 진료비에 따라서 다른 주의수준을 적용해 주어야만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다.
의료광고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의사들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이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싸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소비자들이 의사와 병원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의사들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의사가 치료를 잘하는지 어떤 의사가 못하는지는 의사들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못한 의사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밝히지 않겠지만 경쟁자인 다른 의사의 잘못은 밝히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환자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사들에 비해서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비교광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소비자인 환자들은 의사와 의료행위에 관하여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되고 그것이 현명한 판단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의료광고를 못하게 하는 현재의 제도는 의사들간의 담합적 성격이 강하다. 서로 경쟁하지 말고 편히 살자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가. 의사의 존재이유는 환자이고 환자를 위해서 의사들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자유를 주고 또 경쟁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은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려면 획일적 판결을 지양하고 의료수가규제를 풀어야 한다. 또 의사들간의 담합성격이 짙은 광고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규제를 폐지하고 의사들간 담합의 여지를 제거한다면 다양한 의료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수많은 선택지에서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의료계약이 시장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는 특성들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은 그 실패의 가능성조차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시장의 실패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시장의 실패를 해결한 병원과 의사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에서도 자유로운 계약은 존중되어야 한다.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