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의 29일 새벽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는 ‘김정은 정권의 타임라인’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는 관심없고 우선 핵보유국이 되려는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전념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정권 붕괴를 걱정하지 않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정부가 예상하고 있는 10월 이후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외교 공간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어쩌면 북미간 대화가 성공한 이후에나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날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인 26일 정부가 한때 300㎜ 신형 방사포로 오인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쏘아올렸다.
북한의 방사포 발사관은 모두 8개로 동시 포격이 가능한 데다 비행 고도가 낮아 우리가 보유한 패트리엇-2나 개발 중인 KAMD 등으로 요격이 어렵다. 게다가 전날 김정은이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을 현지지도한 것으로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해 대남용 훈련으로 분석됐다.
그리고 북한이 이날 일본 상공을 통과해 괌을 타격할 수 있는 비행거리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일본 정부는 두차례나 주민대피령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북한의 도발 행태가 남한을 무시하고, 일본을 볼모로 미국과 직접 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날 미사일 도발에 대해 북한이 이미 공언한 바 있는 괌 포위 사격 행태와 달랐지만 괌을 포위할 능력을 충분히 과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9월 괌의 주요 군사기지들을 제압‧견제하고, 미국에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 괌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4발을 동시에 발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미국과 이른바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 괌 포위 사격 방안까지 언급했었지만 지난 15일 이후 열흘 이상 도발을 자제하며 상황을 관망하는 듯했다. 김정은은 지난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당분간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는 사격을 유보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때 북한과 미국 간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날 북한의 도발은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화 제의를 받지 못한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날로 북한은 올해만 들어 13번째, 문재인 정부 이후 9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이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전략도발로 간주하고 대응했다. 아침 일찍 청와대 NSC 상임위가 열렸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오전 9시20분쯤 우리 공군 전투기 F15K 4대가 MK84 폭탄 8발을 태백 필승 사격장에 투하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 지휘부를 초토화시키는 훈련이다.
이렇듯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도발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남북간 특수성에 기대 대화를 제의한 우리 정부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은 최근 북핵 동결을 우선 조건으로 내건 우리 정부의 대화제의를 원색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현재 김정은 정권 유지를 위한 것으로 핵보유국을 달성은 현재 북한 지도부가 숙명처럼 해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개방 압박에도 불구하고 체제 붕괴를 우려해서 순순히 따르지 못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안보 이슈’만이 주민을 결속시킬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보 소식통에 의해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정은에게 ‘핵‧미사일만이 정권 유지를 위한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북한은 NPT(핵확산방지조약)를 탈퇴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지를 드러냈고, 이 방법만이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고 미국과 대화할 수 있는 협상카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핵미사일 등 첨단무기 개발을 통해 외화 수익도 노린다.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이라크 등에 북한의 무기가 많이 공급되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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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지난 7월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쌍안경으로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사진=연합뉴스 |
현재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이날 아침 평양 북쪽 순안 지역에서 발사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최고 고도는 550여㎞로 비행거리는 약 2700㎞로 평가하고 있다. 또 한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이 고체 또는 액체 연료 로켓을 사용했는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고체 연료일 경우 최소발사거리를 감안할 때 하와이까지 타격 가능한 기술 진전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괌 포위사격 당시 엄포용으로 거론한 화성-12형으로 보기엔 사거리가 짧아 단정하기 이르다”면서도 “액체 로켓이면 괌 사거리 위협 시위로 볼 수 있지만 고체 로켓으로 확인될 경우 사거리 1000~2000㎞로 추정되는 북극성-2형의 사거리를 뛰어넘는 큰 기술적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화성-12형’이 하와이를 목표로 한 것이라고 주장해왔고, 이럴 경우 최대 사거리가 7500㎞ 정도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상 탄도미사일은 정상적으로 발사할 때 최대 사거리의 40%정도가 최소 발사거리로 알려져 있어 유효한 최소거리는 3000㎞이므로 이번 미사일의 비행거리가 다소 짧다”면서도 “하지만 사거리를 줄이기 위해 고각발사나 저각발사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 비행거리가 2700여㎞라면 최대고도는 약 700㎞정도가 아닐까 한다. 즉 이번 발사가 화성 12형의 저각발사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3개로 분리됐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주목했다. 그는 “아직 다탄두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보지만 만약 3개로 분리된 것이 미사일의 탄두가 아니라 비행과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2단 추진체 탄도미사일일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날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1단인 ‘화성-12형’이 아니라 2단인 ‘무수단’이나 ‘북극성-2형’일 가능성도 제기한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은 이날 괌 타격이 허세 공갈이 아니라는 것과 그런 능력과 배짱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로 억지의 3대 요소인 3C, 역량(Capability), 신뢰성(Credibility), 전달(Communication)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대화를 원하지만 미국 정부의 타임라인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타임라인으로 끌어가고 있는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의지와 배짱을 드러내 몸값까지 올리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한편, 이날 일본은 자신들의 상공을 지나는 북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지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자위대의 탄도미사일 파괴 조치는 실시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나라의 안전·안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밝혀 평소 방침과 위배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김동엽 교수는 “이날 북한의 미사일은 일본 홋카이도 통과 때 거의 최고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며 “통상 영공으로 보는 100㎞를 넘는 상황에서 일본이 요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