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직접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문 대통령이 김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만났을 때 비핵화를 언급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에 김영철 통전부장이 반발하지 않은데다 대화 중에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 북미대화가 성사될지 주목된다.

전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미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지적했고, 북한 대표단도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고 전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한 대표단에 ‘비핵화 언급’을 한 것과 관련해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북한에 비핵화 의지를 구체적으로 천명하셨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서 비핵화를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말씀하셨다”며 “북한측은 특별한 반응없이 경청하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단순히 원론적으로 비핵화해야 한다는 말뿐만 아니라 방법론도 제시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 대표단에 제시한 비핵화 방법론은 그동안 북핵 문제 해법으로 강조해온 ‘동결 후 폐기’를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하기 곤란하다”고 했고, 북한의 반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청했다는 반응 외 다른 것은 전달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은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NCND로 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 대표단에 비핵화를 직접 거론한 것은 북미대화 중재에 적극 나서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만 응할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계기로 방한한 펜스 미 부통령에 이어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도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확인시킨 바 있다.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우리는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북한의 오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길을 따르는 첫걸음을 의미하는지 볼 것”이라며 “우리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6일 서울 한 호텔에서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파악돼 북미대화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오찬에 우리 측에서는 정 실장을 비롯해 천해성 통일부 차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이 각각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철 통전부장과 함께 방남한 북한 외무성 대미외교 담당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과 미국 정부 대표단으로 방한한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과의 접촉 여부가 있었는지도 주목된다. 후커 NSC 보좌관은 이날 이방카 보좌관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으므로 전날 평창올림픽 폐회식 전후 시간 외에는 사실상 북측과 접촉할 기회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 북한과 미국 대표단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가 서로 탐색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고, 대표단 귀환 이후 북한과 미국의 다음 행동으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비핵화 논의’라는 답변을 얻은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도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확인하는 '탐색적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최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남북관계 개선 시기 동안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지‘를 언급한 것이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유예) 선언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제재 움직임을 더욱 강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정권이 실패했던 대북정책에서 탈피할 것”이라고 강조해온 만큼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북한의 본심인지 구체적으로 당국자 입을 통해 확인하지 않으면 쉽게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