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오는 4월과 5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순차적으로 열리게 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한 흐름을 탔다. 대북특사단으로서 5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고, 9일 도널드 트럼프 옆에 앉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한 ‘특별 메시지’가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만큼 각 회담의 의제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큰 고리를 끊어버림으로 해서 제재라든지 나머지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풀리는 방식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방식이 아니라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점층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일괄 타결할 의제를 제안해 북미대화를 성사시키고 성공시킬 발판으로 삼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이 바라는 비핵화와 북한이 바라는 체제보장을 빅딜하는 대화가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의제도 남북간에 풀 소소한 의제가 아니라 북미간 대화가 무르익도록 한껏 분위기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는 크게 볼 때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선언적 의미를 담은 것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군사적 긴장을 풀 방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 정부는 평화 얘기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는게 바람직할지 고민중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 북한연구실장은 이어 “문 대통령이 제안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받아들이고 북미대화로 이어질 의제가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평화체계 가동과 비핵화 및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군사적 신뢰환경 조성일 것”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노력, 남북한 군비통제 노력에만 합의해도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만 논의하면 되니까 정부가 이런 그림을 고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상철 경기대 부총장(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남북정상회담 의제는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의제로 가는 것이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언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의제가 제시돼 전격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북미 간 대화는 물론 남북대화도 북한의 도발 중단 또는 핵 동결 선언 이후 미국에서 대북 경제제재를 유예하거나 풀어주는 ‘행동 대 행동’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처럼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핵 폐기’만 주장할 게 아니라며 ‘창의적 구상’을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첫 미국 방문 때 전용기 내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원샷으로 북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평화협정 체결을 비핵화의 중요한 엔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평화협정은 비핵화 논의의 중요한 동기이자 프로세스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정부 내 신중론은 있지만 대화를 하지말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북미간 암묵적‧실무적 물밑접촉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사람의 성향으로 볼 때 한쪽이 ‘대화 카드’를 제시하고 다른 한쪽이 전격 수용했을 때 양쪽 모두 충분히 대화를 지속할 동기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봐야 한다”며 “동시에 양족 모두 이번 대화에 실패할 경우 후과가 어떨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이번에 실패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홍 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된 김정은의 특별 메시지와 관련해 “정학히 알 수는 없지만 억류자 석방이나 인권 문제, ICBM 포기 등은 아닐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써브 카드’에 불과하거나 핵과 달리 사찰‧검증이 불가능한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동북아에서 패권 유지라는 큰 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으로서는 북미수교가 이뤄지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이 주한미군 철수일텐데 이것을 안해도 된다고 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북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질적인 남북 접촉은 4월 초부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남북 모두 각각 내부적으로 의제를 조율하고 회담 기조 등을 의논할 시간이 최소한 1~2주 정도는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 등과 관련된 남북간 실무 논의는 이르면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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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일 오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보좌진들과 만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방북한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