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서로 자기편에 서라는 양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한 청와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개입을 꺼려하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정부의 전 방위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외교력도 발휘하지 못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겠지만, 국익이 걸린 사안인 만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일 외신과 전자 업계 등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달 28일에는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한국 정부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일 한‧미동맹을 언급하며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은 8일 인터뷰를 통해 “화웨이 제재는 미‧중 무역전쟁과 별개”라며 반 화웨이 대열에 한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은 표면적으로 ‘화웨이’를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패권 다툼을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춘군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는 “지금 미‧중 간 다툼은 무역 전쟁이 아니라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패권전쟁’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미국의 패권이 중국에 평화적으로 넘겨질 가능성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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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 |
문제는 양국의 다툼이 이어지는 동안 한국 기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7일 미국의 반화웨이 전선 동참 요구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며 “정부로서는 국가 통신보안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관리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역시 “기업 간 의사결정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정부가 중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기업들의 입장은 더 곤란해진 상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업에 대한 간섭이 지나쳐서 문제였던 정부가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중국이 한국 기업에 보복성 조치를 가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중국의 입장을 수용할 경우 미국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일 수 있겠지만 큰 물결에서 보자면 미국 편에 서는 게 맞다”며 “정부가 절대 하지 말아야 될 것은 기업들에 중국 편에 서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의 주문을 외면하자니 한미동맹이 훼손될 수 있고, 또 중국 시장을 등한시 하자니 상당한 고민이 뒤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전 세계가 미국에 협조하는 분위기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의 요구에 맞추돼, 보다 세밀한 검토를 통해 (미국과 중국에) 양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끌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춘근 대표는 지난 5일 미디어펜 산업 포럼에 기조강연자로 참석해 미중 패권 전쟁에 대해 “미국의 싱거운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들인 인구통계학·정치학·경제학·지정학적 여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세계는 규칙도 심판도 없으며 착한 아이들에게 상을 주지 않는 국제적인 정글”이라는 딘 애치슨의 발언을 인용, “선량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이득인지 판단한 후,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진단이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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