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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사진=연합뉴스 |
[미디어펜=박규빈 기자]"비상탈출 가능성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왕좌왕 하시면 안 되고 모든 짐 다 버리셔야 됩니다." "벨트·아이 상태, 잘 확인해 주십시오. 아이 잘 위로 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저희 비상착륙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해 10월 25일, 승객 184명을 태운 김해국제공항발 김포국제공항행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 10분 내 비상 회항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제주항공 B737-85F 7C207편을 운항했던 기장이 했던 말이다.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행정처분심의위원회는 지난 20일 제주항공에 대해 6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오토 파일럿 장치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맞으나 운항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비상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사건 발생 당시 정부 당국 조사에 따르면 제주항공 B737-85F 7C207편(기체 등록번호 HL7780)의 자동 조종과 관련한 소프트웨어 8종 중 '수평이동'과 '상하이동' 2종에 오류가 발생했으나 제주항공은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회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항공기 운항 규정상 수동 조종 역시 가능해 이륙이 가능했던 만큼 조종사들은 직접 수평·상하 기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륙한지 10도 채 안돼 나머지 오토 파일럿 소프트웨어 6개 역시 통제 불능상태에 빠졌다.
이에 조종사들은 김해공항으로 비상 회항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장은 비상 탈출·착륙 가능성에 대한 기내 방송을 실시했고 객실 승무원은 승객들로 하여금 손으로 머리를 감싸라는 뜻으로 "브레이스!"를 연발하며 무사히 착륙했다. 사실상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는 가능한 조치를 다 한 셈이다.
아울러 제주항공은 사건 발생 직후 해당 기편 승객들에게 1인당 5만원의 지연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비상착륙 안내방송을 한 기장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다며 사건 발생 13개월만에 제주항공에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한편 당국은 기장에 대해서는 "만약을 대비해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며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승객들은 정신적 피해 보상비를 요구하며 소송을 낸 상태다.
국토부의 결정에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는 "사고 발생 당시 해당 기장은 수동 조종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던 만큼 당국이 처분을 면한 건 다행"이라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종사는 "위험 상황 속에서 안전히 운항을 마친 점에 대해 상을 줘도 모자란데 제주항공에 과징금을 물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토부가 책임을 져야 할 희생양을 찾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한편 해외에 비해 국토부의 항공 과징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현행 항공 관련 법규에 따르면 국내 항공분야 과징금은 100억원까지 징수가 가능하다. 6000만원이 상한선인 미국과 독일의 166.6배이고 10억원이 최대 한도인 일본의 10배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지난해 항공기 랜딩기어 안전핀을 제거하지 않고 운항해 과징금 3억원과 조종사·정비사 자격정지 30일 처분이 내려졌다. 미국에서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연방항공청은 과징금 2000만원만 부과한다.
국내 항공 과징금이 해외 대비 유독 높아진 건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아시아나항공 착륙 사고와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LG전자 헬리콥터 충돌 사고 등이 있고 나서부터다. 사고 이전 대비 무려 90배나 올랐으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국내 항공업계는 행정 처분을 통한 항공 운항 안전 확보보다 징벌적 처벌에 맞춰져 있다고 아우성이다. 국토부는 행정처분 가감 기준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했으나 아직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항공기는 여타 여객 수단 대비 규모가 큰 만큼 사고 발생 시 대규모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비가 부실하게 이뤄졌을 경우 처벌이 마땅하나 당국의 항공 행정처분은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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