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내꺼’와 ‘내꺼 아닌 거’로 구분하는 세대의 연가

[2014 유행어 열전②] 세상을 ‘내꺼’와 ‘내꺼 아닌 거’로 구분하는 세대의 연가 '썸'

   
▲ 이원우 기자

대한민국의 20대는 어떤 존재인가? 이 노래 안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바뀐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 음악 시장의 모든 경쟁은 음원 사이트 ‘멜론’ 차트 10위권 안에서 이뤄진다. 몇 개월 몇 년을 준비한 신작이라도 10개의 리스트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제한받는다. 어떤 때는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치열해진 이 경쟁 속에서 물론 소비자들은 훨씬 다양해진 작품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롱런 현상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는 건 ‘이야기’를 찾는 언론과 평론가들에겐 애석한 일이다. 나온 지 몇 년 지난 음악이 차트를 역주행해 천하를 거머쥐는 현상도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지난 8월에 출시된 걸그룹 EXID의 노래 ‘위아래’가 발매 한 분기 만에 차트 10위 권 내에 진입한 정도가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알고 보면 오래 활동해 온 가수 정기고와 걸그룹 씨스타의 멤버 소유가 함께 부른 노래 ‘썸’이 놀라웠던 이유는 무엇보다 히트의 ‘기간’에 있었다. 올해 2월7일 발매된 이 노래는 공개 즉시 8개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월19일 MBC MUSIC ‘쇼챔피언’ 챔피언송 수상을 시작으로 4월4일 KBS ‘뮤직뱅크’까지 10여 개의 1위 트로피를 가져갔다. 2014년 ‘SBS 가요대전’ 음원상도 이 노래의 차지였다. 요즘 세상에 이 정도면 기현상이다. 단연 ‘2014년의 노래’다.

20대만 이 노래를 즐긴 건 아니겠지만 이 곡의 세계관은 다분히 ‘현재의 20대’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달콤한 사랑노래 같지만 노래의 시작을 여는 감정은 의외로 ‘짜증’이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 진짜 짜증이 나서 미치겠단 의미는 아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걸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할 때 20대들은 습관처럼 “짜증난다”고 말한다.

“잠이 들 때까지 한 번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망설이는 남녀가 한 마디씩을 주고받은 뒤 노래는 2014년 최고의 노랫말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부분을 통과한다. 수많은 변종과 응용을 탄생시킨 2014년 최고의 유행어다.

연인을 ‘내꺼’로 표현한 노래가 ‘썸’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9월에 발매된 보이그룹 인피니트의 히트곡 제목도 ‘내꺼하자’였다. 풍요의 시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시대만을 살아온 세대들은 ‘내꺼’의 의미를 본능으로 이해하고 있다.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안과 밖을 예민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 '씨스타' 소유-가수 정기고

사랑(eros)이라는 감정도 소유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이 세대는 연애를 시작하는 방식에서도 소유권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작동시킨다. 친구들도 좋기는 하지만 ‘내꺼’는 아니다. 진짜 ‘내꺼’는 한 사람 뿐이다. 이 사람을 ‘내꺼’로 만들긴 해야겠는데 방법을 모른다.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방법을 모르니 짜증이 난다. “때론 친구 같다는 말이 괜히 요즘 난 듣기 싫어졌어.” 맘에도 없는 소릴 해보기도 한다. “요즘 너 별로야.”

좋아한다는 말을 담백하게 표현하기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나 대신 그 사람이 먼저 용기 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는 이어진다. “날 사랑한다 고백해 줘.” 나보다 먼저 말해주길 바라는 소심함, 그럼에도 마음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설렘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노래가 바로 이 곡 ‘썸’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대한민국의 20대는 어떤 존재인가? 통합진보당 해산 직전 시행된 세대별 여론조사는 흥미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19~20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진당 해산에 찬성한 30대는 48%인 반면 20대는 52.2%로 더 높게 나왔다. ‘젊을수록 좌성향’이라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이에 대해 ‘20대가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일면 타당한 얘기지만 아직은 배움과 경험이 일천한 그들이 어떤 사상체계에 입각한 보수 성향을 갖게 되진 못했을 것이다. 다만 소유권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현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거라 말한다면 너무 많이 나간 걸까?

웬만한 건 ‘내꺼’와 ‘내꺼 아닌 거’로 구분하는 게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세대라면 이 노래 ‘썸’에 열광할 만도 하다. 하필이면 가수 이름도 소유였던 이 노래가 흥미로운 지점은 그런 곳에도 존재했다.

‘보수인 듯 보수 아닌 보수 같은 20대’는 앞으로 어떤 30대, 어떤 40대로 성장할까. 소유권에 대한 적응과 애착이 이기주의로 진화하지 않게 하려면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쨌든 오늘의 20대들은 2014년 ‘썸’이라는 노래를 열심히 들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