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우후죽순 쏟아지는 감성물의 홍수에 애써 시선을 피해왔다. 감성 키워드를 달고 나오는 작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고, 정작 사람의 내밀한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감성'이라는 포장지만 씌우고, 두서가 없어도 대충 공감하고 힐링하자는 피상적 묘사가 싫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표현하고 싶은 감정에 집중하긴 쉽지만, 그 감정을 일으키는 트리거가 무엇인지 적확하게 따지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다.
그런데 '소울메이트'는 잘 정돈된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결핍을 가진 두 친구가 서로를 보듬고 또 결핍으로 인해 상처받는 모습을 그린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성장하는, 청춘들의 일기장이자 어른들의 동화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무대로 두 소녀의 관계도를 펼쳐 보인다.
화목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지만 타인이 바라는 안정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하은(전소니), 반복되는 전학과 급변하는 환경 속 불안정한 내면을 가졌지만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미소(김다미). 본인들의 그림 기법인 정물화와 추상화처럼, 대비되는 두 소녀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단짝이다.
하지만 서로를 동경하고 사랑하던 소녀들은 역설적이게 그로 인해 멀어진다. 진우(변우석)라는 소년의 등장으로 삼각관계 상황을 마주하자 하은은 입을 꾹 닫으며 자신을 미소에게 맞추고, 미소는 상처받을 하은을 생각해 불쑥 떠나는 선택을 한 것. 그렇게 둘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각자가 가진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다. 두 소녀의 결핍은 이후 하은이 그림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교사가 되는 성장사나, 미소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각종 직장을 전전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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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소울메이트' 메인 포스터 |
몇 년 전 원작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를 본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의 경우에도 이성관계로 인해 친구와 멀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여타 청춘물이나 로코물에 삼각관계란 존재하기 마련이고 많은 이들의 경험 사례로도 남아 있으니… 친구는 "남자가 문제다"라며 성의 없는 교훈으로 영화의 결론을 내렸다. 맞다며 웃어넘겼지만, 사실 동의하기 힘들었다.
진우는 우정의 걸림돌이었을까. 두 소녀가 잠시 어긋난 것은 삼각관계에 휘말렸기 때문일까. 누군가는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우를 통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결핍을 확인하고, 이와 맞서야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마음의 나체를 드러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진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두 소녀는 그저 소꿉친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도리어 진우가 두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소울메이트로 거듭나게 한 오작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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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소울메이트' 스틸컷 |
서먹해진 두 사람이 다시금 서로를 찾고, 단순한 그리움과 후회를 넘어 서로 다른 결핍을 인정하니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곧 자신이 가진 결핍을 회피하고 싶거나 상대의 결핍을 마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은의 어머니는 나지막이 말한다. "사람들이 왜 다 다르게 생긴 줄 아나, 다 다르게 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악'으로 규정하거나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 판단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본질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는 마음가짐과 옳고 그름의 잣대는 편협해져 좀처럼 꺾이지 않고, 어떤 이들은 아이의 고집을 가지고 어른의 외피를 쓴 채 늙어간다.
그래서 '소울메이트'는 힐링 드라마, 또는 풋풋한 청춘 단상의 스케치, 아릿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맛봐도 좋지만… 타인이 그린 나의 모습, 내가 그린 타인의 모습을 통해 내 마음을 알아가는 보고서로서 좋은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나 가진 추억과 회한을 건드린다. 센치한 감상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서투르게 흘려보냈던 실수와 과거를 복기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나의 결핍을 외면한 채 아집에 빠져 타인과 세상만을 탓하는, 송곳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길.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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