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전범(典範)은 ‘공정과 상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의 모든 아젠더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틀 속에서 만들어졌다. 야권이 ‘내로남불’이라며 반발했으나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나름의 잣대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지지율 상승이라는 결과도 얻었다.
당초 국민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건을 통해 ‘공정과 상식’을 나름대로 내재화하기에 이르렀다. 공정과 상식은 윤석열정부가 스스를 규정한 정체성이자 국정 기조다. 국민 여론도 정부의 국정 방향과 정책을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면에서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행보는 의아스럽다. 국민 여론은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공정과 상식을 두 장관이 부정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또 그것이 아니라면 윤석열정부가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알려진 대로 원 장관은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백지화했다. 대통령실과 상의 없는 독자적 결단이라고 한다. 자신의 결단인 만큼 장관직을 걸겠다고 한다. 여기서 정치적 쟁점이나 시비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러한 충격적 결단이 정부, 특히 윤 대통령에게 큰 부담임에도 간과됐다는 점이다. 정부가 강조해 온 공정은 부당한 침해를 장시간 받고 있던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원 장관의 결단으로 훼손됐다.
또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보수주의 가치가 무시됐다. 아무리 주무 장관이라 할지라도 주민들의 20년 된 염원을 상식적 설명이나 과정 없이 무위로 돌리는 행위는 납득키 어렵다. 특히 서울-양평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대통령 공약사업이기도 해서 이해가 더욱 어렵다. 물론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염화미소의 공감대가 있었을지는 당사자 외 알 사람이 없다. 하지만 현실적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돌려졌다. 대통령이 운신할 정치적 공간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부담은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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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최대한 빨리 회군해야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좌고우면하며 명분을 찾다가는 실기(失機)할 수 있고 부담은 누적된다. 가장 빨리 추스르는 게 대통령의 짐을 더는 일이요 후일을 도모하는 첩경이다. |
스타 장관 중 한 명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부정하지 않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언행도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지형이나 정파를 넘어 이미 상식으로 굳어진 역사를 정치로 풀어가려 한다는 비난을 불렀다. 박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팩트 변화 없는 해석’으로 독립운동 역사 다시쓰기에 나섰다.
박 장관은 지난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라고 선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박 장관은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다”며 장관직까지 거론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사주로 꾸려진 만주국 군대로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다는 게 그동안 우리 사회가 합의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박 장관은 백 장군을 친일파로 결정한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박 장관은 “참여정부 때 친일반민족규명법이 만들어지고 위원회가 활동을 했다”며 “그 기준이 어느 정도 공정한가, 이런 데 대해서는 일각에서 상당한 문제 제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백 장군의 친일 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냥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서 방망이를 쳤는데 그 위원회가 그 사람(백선엽)이 친일이다 한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인 팩트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정부가 구성한 위원회까지 불신하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백 장군의 행적을 추적해 ‘1941~45년 (일제 허수아비) 만주국 군 장교로 침략전쟁이 협력했다’며 친일반민족인사로 규정한 바 있다. 무엇보다 백 장군의 친일행적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백 장군의 회고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백 장군은 일어판 회고록에서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당사자가 인정한 사실을 뒤집을만한 해석이 있을까.
박 장관은 백선엽 장군을 ‘6·25라는 우리 최대의 국난을 극복한 최고의 영웅’이라고 규정하는데 이에 사족을 다는 이는 없다. 백 장군이 낙동강까지 남하한 북한군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이라는 팩트는 이미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 흠 없는 영웅은 없었다. 선진 사회일수록 영웅담 속에 그의 약점을 인정하고 반면교사로 삼는다. 2차 세계대전을 극복한 처칠 영국 수상이나 드골 프랑스 대통령 모두 이 범주에 속한다. 한때 국립현충원에서 친일파를 파묘(破墓)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적이 있다. 이 때 사회적 합의는 백 장군의 공과를 나란히 기록하고 파묘를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 장관이 당사자까지 인정한 사실과 사회적 합의까지 뒤집고 역사기록물에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을 빼겠다니 진심을 의심받는다.
원희룡 장관과 박민식 장관은 정치인 출신으로 내년 총선 출마가 거의 확정적이다. 따라서 장관직을 이용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거나 유리한 공천지형을 만들겠다는 오해가 여권 내부에서도 고개를 든다. 여권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한 원 장관이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한동훈 법무장관을 지니치게 의식, 급발진했다는 구설이 따른다. 박 장관을 행해서는 낙선지역인 부산을 피해 상대적으로 당선에 유리한 지역을 노린 정치 행위로 해석한다.
이 같은 추측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현재 벌어진 두 장관의 일탈은 대통령과 정부에 커다란 부담이 틀림없다. 수습 과정을 보면 두 장관 역시 자신들이 벌인 판이 쓰나미로 번지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최대한 빨리 회군해야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좌고우면하며 명분을 찾다가는 실기(失機)할 수 있고 부담은 누적된다. 가장 빨리 추스르는 게 대통령의 짐을 더는 일이요 후일을 도모하는 첩경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역사가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공정과 상식에 부합한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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