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과 밀착, 전체주의 세력과 맞서…일본, 북한 남침 막는 후방기지로
건국절 논쟁 피했지만 '적과 아군의 구분' 尹 원칙 재천명…협치 '불가'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국민은 민권의 자유를 보호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를 불복한다든지 번복하려는 권리는 허락한 일이 없으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물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또 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니 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해서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는 것이니 누구나 다 이것을 밝히 알어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1948년 8월 15일 첫 광복절-정부수립일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축사 중 발췌)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 왔습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2023년 8월 15일 광복절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 중 발췌)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밝힌 경축사를 들여다보면, 대외적으로는 대일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대내적으로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라는 윤 대통령의 기존 원칙을 재차 드러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이번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27번 등장한 '자유', 9차례 나온 '국민', 7번 나온 '자유민주주의', 6번 언급된 '공산전체주의'와 '독립'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경축사에서 75년 전 첫 광복절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공산분자,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해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들에 대해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규정 짓고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반국가세력과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누구인지 구체적인 추가 설명은 따로 없다. 단지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한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권 일각이 떳떳하다면 발끈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자기 양심의 문제다. 오히려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해온 어떤 세력이 있다면, 이들을 직접 겨냥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 윤 대통령에게 박수를 쳐주면 그만일 뿐이다.

   
▲ 8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밝히고 있다. 2023.8.15.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이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내적으로 잡은 또다른 포인트는 '독립운동의 의미 규정'이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 첫 머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며 "단순히 빼앗긴 국권을 되찾거나 과거의 왕정국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며 "따라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도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는 공산 세력과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과 경제성장, 민주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며 "이분들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국가 계속성의 요체요, 핵심"이라고 미래 과제를 제시하고 나섰다.

5000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었고 과거의 왕정국가는 더더욱 아닐 뿐더러, 바로 자유-인권-법치가 지켜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외적으로 주목받는 지점은 바로 대일외교에 대한 정의다.

광복절은 1945년 해방일과 1948년 정부수립일을 함께 기념하는 행사로, 첫 광복절 행사는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기리며 열린 바 있다. 일본에 대한 관계 규정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 8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경축사를 밝히고 있다. 2023.8.15.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대외 발언의 첫 머리를 통해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며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와 역내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간에 긴밀한 정찰자산 협력과 북한 핵 미사일 정보의 실시간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대일 외교 기조와 관련해 새롭게 언급한 대목은, 일본이 유엔사령부 후방 기지 역할을 맡아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억제 요인이라고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며 "북한이 남침을 하는 경우 유엔사의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개입과 응징이 뒤따르게 되어 있으며, 일본의 유엔사 후방 기지는 그에 필요한 유엔군의 육해공 전력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엔사령부는 '하나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히 지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국제연대의 모범"이라며 "사흘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될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반도와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3국 공조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통해, 대북 공조에 있어서 한일관계를 새로운 핵심 역할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내적으로 '건국절 논쟁'을 피했지만, 수위 높은 발언으로 야권의 대대적인 반발을 샀다.

대외적으로는 한·미·일과 밀착하고 전체주의 세력과 맞선다는 복안을 꺼내들었다. 일본에게는 북한의 남침을 막는 유엔사의 후방기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5월 취임식에서부터 지금까지 '적과 아군 간의 선긋기'라는 윤 대통령의 원칙을 꾸준히 드러내온 연장선에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협치와 통합이라는 포용적 메시지보다는 대한민국에 준동하고 있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방어적 입장을 드러낸 윤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더 주목된다. 반국가세력과의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대결 메시지는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