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확실성 증폭…K-배터리 경쟁력 충분
IRA 맞춤 전략·고품질화·제품 다양화, 올해 미션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대표하는 동물 용은 12간지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생물이다. 올해 한국 경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2024년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는 승천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만, 나쁜 선택을 할 경우 연초의 모든 희망은 한낱 가상의 꿈으로 흩어져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전체를 조망해 보면 상‧하반기에 각각 거대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4월의 한국 총선과 11월의 미국 대선이다. 두 가지 정치 이벤트는 올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확실한 불확실성(certain uncertainty)’이다.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감조차 잡을 수 없지만,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선거 전까지 매복돼 있던 문제들이 개표 결과와 함께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올 한 해의 경제 변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역시 1일(현지시간)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쟁, 선거, 경제 경착륙 등 위험 요인이 많아 예상치 못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디어펜은 금융·건설·산업 등 분야별로 한국경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조성준 기자]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올 한해 대외적으로 증폭된 불확실성을 뚫고 글로벌 주도권을 강화하는 데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계는 기존 삼원계 배터리 외에도 가성비 배터리 라인 추가, 차세대 배터리 개발 등 배터리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최근 미‧중 패권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고 있는 데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변수에 대응하는 등의 전략도 요구된다.

배터리 분야가 올 해 본격적인 공급망 재편 구도에 놓이는 만큼 앞으로 1년 동안 쌓은 결과물이 향후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 IRA 파도 타고 북미 중심 글로벌 전략 본격화

올해부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따라 북미 시장에서는 중국산 배터리가 설 곳을 잃고 한국산 배터리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IRA 세액공제를 받는 전기차는 총 19개 모델이다. 그 중 중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은 없다.

   
▲ SK온 미국 조지아 잭슨 카운티 배터리 공장./사진=SK배터리 아메리카 제공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쉐보레 2종, 크라이슬러 1종, 포드 3종, 지프 2종, 링컨 1종, 리비안 5종, 테슬라 5종 등이 세액공제 대상이다.

19개 차종이 탑재한 배터리 업체 별로는 LG에너지솔루션이 4종, SK온이 2종, 삼성SDI가 9종, 일본 파나소닉이 4종이다.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만 15개 차종에서 AMPC를 적용받는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이 올해부터 향후 7년간 최대 90조 원에 달하는 AMPC를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연 1조 원, 2025년 경 연간 10조 원의 세제혜택이 쌓이게 된다. 2026년부터 2029년까지는 생산량 확대로 4년 간 매년 20조 원의 혜택이 예상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분리막·전해질 등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니켈·리튬·흑연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중국 기업을 위시한 해외 우려 기업(FEOC)에서 조달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 배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다만 한국산 배터리 사용 차량 중 적용 대상이 기존 예상보다 줄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를 배제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산 배터리 소재, 광물을 써도 해당 배터리는 혜택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는 적어도 올해에는 소재 분야에서만큼은 탈중국을 완료해야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 LFP 개발·차세대 배터리 연구로 라인업 확대 집중

배터리 업계는 작년에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싸구려라고 치부했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서 모종의 성능 향상을 이뤄낸 중국산 제품들이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한국 배터리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작년을 기점으로 배터리 시장이 삼원계(NCM·NCA)와 LFP로 이원화했다고 보고 있다.

   
▲ 포스코퓨처엠이 단계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포항 양극재 공장의 조감도./사진=포스코퓨처엠 제공


K-배터리 3사도 지난해의 충격을 딛고 LFP 배터리 개발에 빠르게 착수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난징 공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전기차용 LFP는 이르면 2025년 말 양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SDI도 오는 2026년 ESS용 LFP 배터리 생산을 공식화했다. SK온은 이미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한 바 있으며, 본격 양산 시점을 오는 2028년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K-배터리는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인 삼원계 배터리의 지속적인 성능 향상을 달성하고 LFP 배터리 생산도 시작해 LFP 일변도인 중국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전고체 배터리, 리튬황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을 강화해 중국 배터리와의 차별화 전략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북미를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생산량도 늘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전망이다.


◆ 배터리 소재업 강화…중국 배제 전략에 특수 기대

배터리 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양극재·분리막·동박 등의 소재 부문에서도 우리나라 업체들은 존재감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배터리 강국인 만큼 소재업체들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주요 기업으로는 양·음극재 기업으로 LG화학,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이 있다.

   

분리막에는 SKIET, 더블유씨피(WCP) 등이 있고, 동박 제조사로는 SK넥실리스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전해질은 엔켐, 동화일렉 등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배터리 소재업체들은 배터리 소재 전 분야에 진출한 셈이다. 리튬·코발트 등 핵심광물을 생산하지는 않고 있지만 일단 올해 AMPC가 적용되는 소재 분야에서는 중국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광물 등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하락으로 이들 업체들은 실적 부진을 겪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핵심광물의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하고 직접 생산 등의 새로운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배터리 소재업계 역시 고품질로 중국 등 경쟁자들을 따돌린다는 전략이다.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도 최근 신년사에서 "기술리더십이 없으면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없다"며 기술력 차별화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올해가 배터리 주도권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배터리·소재 업계 모두 고품질화를 최우선으로 삼고 포트폴리오 다각화, IRA 선대응 등의 종합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압도적인 기술력"이라며 "IRA 대응 전략을 잘 짜고 제품군을 다양화해 소비자 수요를 충족하는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