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상속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이미 합의를 마친 기업도 현재 진행형인 기업도 있다. 또 앞으로 닥칠 미래에 놓여 있는 기업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법원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배려‧보호’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난 3월 취임한 엄상필 대법관의 취임사에서도 드러난다. 엄상필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법원의 임무임을 잊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다수의 이익을 함께 살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상속세에서 규정하는 자녀 상속 1/n 원칙이나, 부부간 이혼에서 재산분할 기준이 되는 공동재산에 대한 범위의 확대는 과거 가부장적 중심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였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자 수단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LG가문 세 모녀의 상속회복청구 소송이나 SK 회장의 이혼 소송을 보면 어느 누가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최근 SK 항소심 결과를 두고 세기의 이혼이라고 말이 많다. 그만큼 노소영 관장이 요구한 재산이 천문학적인 규모였기 때문이다. LG가문의 세 모녀가 상속과 증여를 통해 보유한 재산 역시 1조3000억~1조40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유산인 2조 원을 1/n로 나누자고 주장하고 있다.

LG가문의 세 모녀는 (주)LG 주식 7.84%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가치는 약 1조 원이고 이들이 받는 주식 배당금은 연간 400억 원 규모라고 한다. 보유 재산만 1조 원이 넘고, 매년 배당금만 약 400억 원을 받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중요한 것은 LG가문의 세 모녀와 노소영 관장 모두 경영권에 관심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것이 경영권의 핵심인 지분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정말 경영권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지분을 매각하면 두 회사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등 외부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LG그룹의 경우 6년 전인 2018년에 상속인들이 여러 차례 협의해 상속재산분할합의서에 날인한 바 있다. 헌데 4년이 지난 현재 재산을 다시 나누자며 느닷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당연히 소송의 근거가 되겠지만, 현재까지는 타당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소송은 당사자들 간의 온전한 합의와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75년 역사 동안 이어져 왔던 LG그룹의 ‘인화’를 망친 무모한 과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LG가문의 소송은 사실 현대차그룹에서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아들이 한 명이지만, 세 딸이 있다. 현재 정의선 회장이 승계 작업을 마쳤지만, 상속에 대해 사전에 합의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세 딸들이 1/n을 주장할 경우 현 법률상 해결 방안을 찾기 쉽지 않다. LG가문처럼 합의를 마쳤음에도 딴죽을 거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법원의 기본원칙이 기업의 안정성 확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부의 분배 차원에서 만들어진 현행 상속세율은 최대 60%에 이른다. 이미 기업 오너들의 경영권 확보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승계는 물론이거니와 이혼과 같이 우리에게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이슈마저 경영권 유지에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LG가문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기업의 밥그릇 싸움에서 사회적 약자는 없다.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하겠지만, 코리아디스카운트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안정성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는 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피고용인들이다. 사전 합의된 사안마저 법적 근거 없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사회적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LG의 소송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LG 문화는 현행 법률상 승계에 있어 현명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재계에서도 모범 사례로 꼽혔지만, 어떻게든 법률의 틈새를 이용해보려는 현재의 모습은 LG가문이 강조해온 인화와 도덕성 이미지에 금을 낸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부정거래 의혹까지 받고 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취득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로 인해 LG복지재단의 대표직도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LG가문의 기치가 순간적인 개인의 착오로 무너질 우려가 있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LG가문의 모녀는 지금이라도 집안 어르신들이 75년 간 분쟁 없이 장자승계를 인정해왔던 이유와 소송을 왜 끝까지 반대했는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시대가 바뀌면 법의 해석이나 적용이 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22대 국회에서는 국가 경제를 받들고 있는 기업의 안정성을 지킬 수 있는 법안들에 대한 고민이 결과로 이뤄지길 바란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