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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정 정치사회부장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남북 2국가론을 제기하면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일반국민들, 특히 젊은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불신은 있어왔다. 하지만 '정치인 임종석'의 도발적인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즉각 여당인 국민의힘 쪽에서 "종북을 넘어 충북(忠北)"이라고 비난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나서 "북한을 따라한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에서도 김민석 의원이 "김정은에 동조한다"고 비판했다. 임 전 실장과 김민석 의원은 똑같이 과거 학생운동권 출신이어서 86 진영도 갈라진 셈이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임 전 실장을 비난하는 기조는 똑같이 '북한 김정은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한 정부 인사는 "김정은의 2국가론에 대한 해설서를 듣는 듯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자칭 통일운동가였다. 임 전 실장은 이번에 "통일은 미래세대의 권리"라며 "충분히 평화를 정착시키고 30년 이후에나 통일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던 그가 "통일하지 맙시다"라며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았는데, 왜 하필 그 시점이 김정은의 2국가론 발표 이후인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전 실장은 과거 NL(민족해방) 주사파 출신으로 오랫동안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을 맡아왔다. 2005년 설립된 경문협의 핵심사업은 국내 방송사 등으로부터 북한 조선중앙TV의 저작권료를 징수해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이다. 경문협이 2005~2008년 실제 북으로 송금한 금액은 8억여원 정도라고 한다. 2008년 박왕자 씨 금강산 피격사건으로 경문협의 대북송금이 중단된 이후 2009년부터 올해까지 경문협이 징수해 법원에 공탁한 저작권료는 30억 9600만원에 달한다.
그는 2019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제도권 정치를 떠나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더 이상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말한 것은 단순히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종의 반어적 표현만이 아닌게 분명하다.
그는 "통일에 대한 지향과 가치만을 헌법에 남기고, 모든 법과 제도, 정책에서 통일을 들어내자"며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면서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분명히 말한다.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다.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전 실장의 속내가 김정은의 주장에 화답하려는 의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일각에선 새로운 통일 담론을 제시한 것이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의 주장엔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으므로 같은 진영이라고 덮어놓고 옹호할 일은 아니다. 먼저 통일을 자신의 전매특허처럼 여기는 모습이다. 임 전 실장은 과거 1989년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특히 그가 주장한 헌법의 영토 조항 삭제나 통일부 없애기는 너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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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측 대성동 마을 태극기와 북측 기정동 마을 인공기가 마주보며 펄럭이고 있다. 2024.6.25./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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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임 전 실장은 "남북이 다른 나라로 평화롭게 협력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을 모르거나 북한에 환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왜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혁개방을 한사코 거부해왔는지를 진정 모르는지 묻고 싶다.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세습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폐쇄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 특히 최근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제정해서 외부정보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결국 임 전 실장이 이번에 제시한 '동북아 단일경제권' '동북아 일일생활권'은 통일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헌법의 영토 조항을 삭제할 경우 혹시라도 북한이 붕괴되거나 앞으로 통일이 됐을 때 북한지역을 우리 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처럼 탈북민들이 남한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우리국적을 취득할 근거도 사라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있다. 또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절차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이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헌법의 영토 조항은 이승만정부가 탄생할 때 남한 단독정부에 대한 반발이 있으니까 헌법에라도 영토 규정을 해놓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후 헌법을 개정하면서 그대로 유지돼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일각에서 우리가 북한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데 영토 조항이 필요하냐는 주장이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연구해본 결과 비록 헌법 4조와 4조의 부조화가 있지만 영토 조항은 필요하다. 과거 서독 헌법에도 '통일이 되면 동독까지 관할권이 미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 전 원장은 남북관계의 특수성, 이중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과 국가보안법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펼치는 것과 남북간 합의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대북·통일정책을 펼치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8.15 통일독트린에 의한 헌법 만능의 통일정책은 자유의 확산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통일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려면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임 전 실장의 '통일하지 말자' 주장은 윤석열정부처럼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무시한 채 한쪽 면만 부각시킨 비슷한 주장일 뿐이다. 북한, 통일 문제에서 갈라진 남한사회에 더 짙은 생채기를 냈을 뿐이다. 그동안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정부가 북한 당국과 대화하고 하나라도 더 합의서를 만들려고 노력해온 것은 그런 것이 쌓이고 쌓일수록 너무 다른 두 체제를 융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쪽만 생각하는 대북정책은 너무 쉽다. '통일운동가 임종석'의 도발은 우리국민 그리고 탈북민들의 열망과 동떨어져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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