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여야의 기세 싸움이 불꽃을 튀긴다. ‘민생 국감’은 공염불이었고 남은 것은 ‘너 죽고 나 살자(All or Nothing)’는 살풍경이다. 공생과 타협의 여지는 사라지고 국민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열하고 냉혹한 국감에 고개를 돌릴 게 분명하다.


정치 철학과 가치, 지향의 문제는 잠시 접어둔다. 또 민생을 챙긴다는 뻔한 클리셰도 걷어낸다. 그러면 살은 내어주더라도 뼈는 취하겠다는, 아니 상대를 죽일 수 있다면 내 뼈도 몇 대쯤은 내주겠다는 핏빛 전장(戰場)이 눈에 들어온다. 야권은 임기 절반을 지나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고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을 논죄하겠다며 윽박지른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대표 사법처리 노린 몸풀기


하지만 내심 노리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다.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몰두하는 이유도 양 특검법의 끝에 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엘도라도가 기다린다는 확신 탓이다. 설사 탄핵까지 못가더라도 탄핵 정국을 조성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각종 사법리스크와 구설을 털어내고 수권(授權)을 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7일 국정감사 개시일의 바쁜 일정에서 민주당은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을 본부장으로 하는 ‘집권플랜본부’를 발족시켜 의도를 확인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책, 김건희 여사관련 각종 의혹, 영남권 중심의 주류와 비주류간 갈등 등을 단번에 끝낼 수 있는 방책으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처리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선택지가 제한된 형편에서 최상의, 아니 감정적으로도 취하고 싶은 필요충분한 선택이다. ‘고르디우스의 고리’같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현안을 일시에 해결할 칼은 ‘이재명의 정치권 축출’ 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자 범(汎)여권의 공감대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은 정치철학이나 정치지형의 문제가 아니다. 이 대표가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윤 대통령도 살고, 플레이어인 국회의원들도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 걸렸기에 퇴로가 없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월 8일 국회에서 국정감사점검회의를 주제하고 있다. 2024.10.8.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따라서 국회는 판테온으로 변했다. ‘정의(正義)의 실현’을 외치는 두 주체가 그리는 정의가 다르니 이제 신전에 바칠 희생물이 필요할 뿐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22대 국회 첫 국감은 타협과 공생 없이 피와 욕망으로 넘실거릴 전망이다. 그것도 상대로 피로 제의를 치르겠다니 섣부른 악수나 포옹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정치권의 욕망은 이번 국감을 다음 대선까지 이어지는 전선(戰線)으로 이해한다. 어느 쪽이든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어야 끝나는 싸움임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전투에 나선 장수들이 지리멸렬할 경우 조기 종식도 가능하다.


물론 여야 모두 전략적 승리를 위한 전술도 있다. 승리의 가능성이 있기에 타협은 더욱 어렵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국감기간 중이라도 ‘김건희여사 특검법’과 ‘채해병특검법’의 재의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내심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자위적 셈법이다. 22대 총선 선거법위반 기소 시효가 10월 10일 만료된다. 따라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이탈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가 내부 동력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재의결할 국회 의석 2/3에 ‘근접했으나 도달하지 못한’ 야권의 간절함이 투영됐다.


반면 국민의힘은 11월부터 연이을 이재명 대표의 선고재판 결과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간의 재판과정을 미루어 유죄 판결이 당연하다는 기대가 확신으로 진화했다. 특히 11월 15일 선거법위반 선고에서 이 대표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의 2027년 대통령선거 출마가 제한돼 야권을 와해시킬 수 있다고 본다. 복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아직 이륙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국 혁신당 대표까지 사법처리되면 야권은 대권후보 부재의 불임 정당 혹은 부실 정당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도 제목이다. 더불어 지난 대선 비용으로 보전받은 434억 원을 중앙선관위원회에 반환해야 하기에 민주당도 치명적 내상을 입는다는 기대다. 하지만 재판결과를 예단해 ‘긁지 않은 복권’을 들고 흥분하다가 재판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 여권 전체가 아노미에 빠질 우려도 있다.


   
▲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월 8일 국회에서 국정감사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속설, 그 이상의 의미


여기서 잠깐 대한민국 정치 중심지 여의도의 속설 하나를 살피고 넘어가자. 국회와 여의도 골목에서 회자되는 속설 중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국회의원 당선 숫자’에 얽힌 개연성은 힘이 있다. 속설에 따르면 선거 당시 대통령 지지율에 3을 곱하는 숫자만큼 여당 국회의원이 당선된다고 한다. 마치 소잡는 칼로 초파리를 해부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과거 선거에서 나타난 상관관계를 곱씹으면 듣거나 말거나 한 정치평론보다 마음을 움직인다.


22대 총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6%를 기록했다. 여론조사(MBC의 선거여론자사 참조)의 결과치인 36이라는 숫자에 3을 곱하면 108이 되고 이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획득한 의석수다. 21대 총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5%였고 여기에 3을 곱하면 165이지만 당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 중이었음을 미루어 이 역시 민주당이 차지한 180석에 부합한다고 해석된다. 앞서 윤 대통령의 임기 중 치러진 제8회 전국지방선거의 경우 특별·광역시장의 경우 8개 중 7개를 휩쓸었다. 또 9개 도지사선거에서도 5개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2%에 달해 대통령 지지율과 선거의 상관관계는 부인할 수 없다.


현재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30%를 오간다. 위 속설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율의 변화없이 선거를 치루면 국민의힘은 필패다. 다행인 건 향후 2년 동안 전국단위 선거가 없다는 것이다. 선거의 부재기간은 국민의힘에게는 판세를 뒤집을 기회이고, 민주당은 정국의 변화없이 현상 유지면 필승이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과 당대표간 갈등은 선거의 공백기가 가져온 필연적 현상일 수 있다. 대통령은 여러 가지 함수를 고려해 정국안정과 난국돌파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권 재창출을 모색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당장 원외인 당대표의 역할은 제한된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제한 혹은 지연되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또 시간이 지나 변곡점에 이르면 국민의힘이 분열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버티면 이긴다는 민주당의 계산은 국정감사를 통해 여론의 대세를 강점해야 한다는 초조감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번 국정감사는 여야가 정권을 놓고 벌이는 살벌한 용쟁호투 속에 민생이 희생될 슬픈 운명이다.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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