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상계엄에 탄핵정국이 이어지며 정치권의 관심이 민생에서 멀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어느 때보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업을 위한 탈규제 정책과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경제 여건이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수년 전부터 관세장벽과 보호무역주의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미중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된 시점부터 각 국가들은 대놓고 보호무역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 진영의 기치였던 자유시장경제는 세계 각국의 패권 다툼에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대표주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 2기를 앞둔 시점에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는 제조업을 소홀히 한 대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과거 1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가졌던 영국은 전 세계에서 비교할 수 없는 패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렸고, 이후 2차 산업혁명은 미국과 독일, 일본을 세계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배경엔 모두 제조업이라는 밑바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맞으면서 일부 강대국들이 자국 공장을 값싼 인력이 있는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했다. 미국 역시 첨단 무기 등 방산과 항공 부문을 제외하면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은 상태다.
현재 제조업은 중심은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이동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를 시작으로 철강, 조선, 가전,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대부분 중요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중국의 약진으로 전 세계 제조업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제조업 중심이 중국에게 넘어가면서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휘두르는 패권에 위협을 받으면서 극단적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도 어찌 보면 중국이 우리 경제의 기반인 제조업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K-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문화의 주류로 떠올랐지만, 제조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 역시 관세 장벽에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출 주도 국가인 만큼 외교 분야에서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내 시장을 교란하고 기업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라면 이제는 우리 역시 세계의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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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판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사진=동국제강 제공 |
철강 산업을 예로 보자. 철강 산업은 주요 수출국에서 반덤핑 제소를 받으며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유입되며 시장 교란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방어를 하고 있지만, 가격을 낮추는 기폭제가 역할을 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중국은 내수 부진으로 전 세계 수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테무, 알리를 통해 자국 공산품 떨이에 용을 쓰고 있고, 철강 제품 역시 올해 11월까지 이미 수출량이 1억 톤을 넘어섰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제품은 후방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전 세계에서 중국산 철강제품에 걸린 AD제소만 원심기준 27건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현대제철이 중국 제조업체를 반덤핑 제소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0월 4일 후판제품에 대해 반덤핑 예비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다만 탄핵정국으로 돌입하며 업무가 마비됐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후판의 경우 수입량이 지난 2023년 200만 톤에 이르렀고 올해는 원화 약세 영향으로 소폭 감소한 상태다. 그러나 저가 수출인 만큼, 가격이 국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이는 현대제철을 비롯해 포스코, 동국제강의 실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유통 시장에서 후판 판매가격은 포스코 기준 톤당 91만 원 수준인 반면, 중국산은 75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차이가 큰 만큼, 고품질을 요하지 않는 경우 중국산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용 후판이 그렇다.
조선업계는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서 유례없는 업황을 맞았지만,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중국산 후판 사용이 오히려 늘었다. 포스코 대비 유통이나 실수요 고객이 적은 현대제철 입장에선 조선용 판매가 많은 만큼 더욱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비단 철강업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체를 위해서라도 관세 장벽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괜히 미국이 불법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IBK에서 ‘세상을 바꾸는 기업들’이라는 광고를 내고 있듯이 제조업은 혁신과 발전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조업은 어려움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 이제는 인도 등 새로운 생산기지를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서 분전하고 있는 기업을 위한 장치 하나쯤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철강이든 반도체이든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 2기에서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베센트는 정부 세수의 원천으로서 관세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세수원으로서 관세 장벽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부족한 세수를 보충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탄핵 이슈로 정국이 어지럽지만, 부디 경제와 산업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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