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혼다와 닛산자동차의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양사는 중국 판매 급감, 전기차 전환 지연, 주력 시장인 동남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합병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합병이 성사된다면 혼다와 닛산은 단숨에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사로 도약하게 된다. 양사의 합병이 가시화하면서 자동차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합병 추진 소식이 알려진 지 닷새 만인 지난 23일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과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합병 추진을 공식화했다. 회견에는 가토 다카오 미쓰비시자동차 사장도 참석했다.
혼다와 닛산은 2026년 합병을 목표로 협상을 본격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내년 6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2026년 8월 새로 설립할 지주회사를 상장해 산하에 양사가 들어가는 형태로 경영 통합을 추진키로 했다. 경영 주도권은 혼다가 갖는다. 지주회사의 회장을 혼다 이사진에서 선출하고 사내·외 이사 과반수를 혼다가 지명할 방침이다. 양사의 자동차 브랜드는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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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과 마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지난 8월 1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
◆ 글로벌 시장 판도 변화...현대차 제치고 세계 3위로 도약
일본 2·3위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성사되면 헌대차그룹을 밀어내고 글로벌 3위의 '자동차 공룡'이 탄생하게 된다. 지난해 혼다는 완성차 398만 대를 판매해 세계 7위에 올랐고, 닛산은 337만 대를 팔아 세계 8위를 기록했다. 양사의 총판매량은 735만 대에 달한다.
1위인 토요타(1123만 대)와 2위 폭스바겐(923만 대)에 이어 단숨에 3위인 현대차그룹(730만 대)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으로 올라서게 된다. 미쓰비시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은 78만 대다. 3사의 통합이 이뤄진다면 총판매량은 800만 대를 웃돈다. 닛산이 최대주주인 미쓰비시자동차는 내년 1월 합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양사의 합병 논의는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혼다와 닛산은 전동화 전환의 과정에서 전기차 전환 대비에 늦은 데다 비야디(BYD)나 지리자동차 등 저가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 격화로 판매 부진이 이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혼다는 지난 7월 중국 내 내연기관차 생산능력 30% 감축 계획을 발표했고, 닛산은 지난 11월 세계 생산 능력의 20% 감축, 직원 9000명 감원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은 합병 추진 발표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해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는 가운데 판매 점유율을 늘리는 목적만으로는 100년에 한 번으로 불리는 변혁기를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경제매체 블룸버그 통신은 "혼다와 닛산의 합병 협상의 큰 이유는 중국"이라며 "BYD 같은 중국 전기차업체의 전기차, 하이브리드차가 약진하면서 일본차가 기존에 누리던 고품질 자동차 제조업체로서의 지위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완성차 업체에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생산 설비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양사는 합병을 통해 차량 플랫폼 공통화, 연구개발 기능 통합, 생산 거점 합리화, 공급망 경쟁력 강화, 판매 기능 통합, 비용 효율화를 가속화하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 등 폭넓은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 위기탈출 위한 '고육지책' VS 시장판도 흔들 '자동차 공룡'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위기 탈출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시각과 시장판도를 흔들 잠재력을 가진 '자동차 공룡'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두 회사의 합병은 자동차 산업 변혁기의 경쟁에서 뒤처진 데 따른 고육지책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양사의 합병인 만큼 통합 시너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혼다와 닛산이 전기차 기술 수준과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투트랙 전략으로 현대차·기아가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양사의 합병에 의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현대차·기아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는 시각도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혼다, 닛산, 미쓰비시의 연합은 스텔란티스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라며 "일본과 유럽 업체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반사이익과 신차 사이클 재진입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그룹에게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와 아시아 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 세계 3위에 올라설 만큼 몸집이 거대해진 양사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꿀 잠재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양사는 기술과 인력을 공유해 비용을 줄이고, R&D(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닛산은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뒤쳐졌지만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보유하고 있다. 혼다는 하이브리드 기술이 뛰어난 브랜드다. 이런 부분에서 양사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끝까지 가봐야…화학적 결합 등 과제 산적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다만 합병이 되더라도 과제는 산적하다. 혼다와 닛산의 주력 시장은 일본, 미국, 중국 등으로 중복된다. 때문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공급망 재편, 공장 통폐합 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혼다는 기술 중심의 독립적 경영 철학을 고수해 온 반면 닛산은 르노와 얼라이언스를 통해 글로벌 협업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두 회사의 문화적, 조직적 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닛산보다 시가총액이 4배 이상 큰 혼다가 합병 주도권을 쥐게 된 가운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분배와 의사결정 구조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 추진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면서 자동차산업이 100년 만에 한 번 일어날 만한 변혁기에서 경쟁에 뒤쳐진 양사의 합병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화,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전통적 자동차 제조사들이 협력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맞이하게 된다. 양사가 산적한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성공적인 합병을 이뤄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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