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정 정치사회부 부장
[미디어펜=김소정 기자]“1973년 하반기는 유신헌법 반대운동의 열기로 전국이 뜨거웠다. 이에 놀란 박정권은 위헌적인 ‘대통령긴급조치 1호’라는 것을 선포함으로써(1974.1.8.) 개헌서명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중략)...긴급조치 1호라는 것은 유신헌법을 비방·반대하거나 개정을 주장만 해도 최고 15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사상유례 없는 조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긴급조치를 비방하는 것도 긴급조치 위반이라고 규정해놓은 점이었다.”

“박정희정권은 대통령긴급조치 1호만 가지고는 국민의 반유신 항쟁을 막을 수 없게 되자 학생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다.(1974.4.3.) 이 조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관련자 처벌을 주목적으로 삼고 나왔는데, 심지어 학생의 ‘정당한 사유 없는 결석이나 시험거부행위’에 대해서도 5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도 선고할 수 있게 돼있었다.”

1세대 인권변호사인 고 한승헌 변호사의 저서 <정치재판의 현장>에 나오는 군사정권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한 기록 중 일부이다.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1972년부터 시작된 유신체제라는 친위쿠데타, 1979년 12.12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5.17 비상계엄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모두 군부세력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독재 시절의 일들이다.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은 6.25전쟁이 진행되던 1950~1952년 5차례 발동된 적이 있다. 

5.16은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기 쿠데타로 규정됐다. 이후 대법원도 2011년 같은 판단을 내렸다. 12.12와 5.18 광주학살은 1996년 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하면서 각각 군형법상 반란죄와 형법상 내란죄로 규정됐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새무얼 헌팅턴은 군사정변에 대해 신생국가에서 ‘예견할 수 있는 정치 과정’으로 봤다. 즉 독립국가 태동이나 근대화에서 군사정변은 있을 수 있지만 과도기를 겪어낸 정부에선 상상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5.16이나 12.12 등은 비판받았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로 인식돼왔다.  

이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대 야당의 패악을 알리는 경고성 계엄이었다"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국민호소형 계엄이었다"는 주장은 탄핵심판 결과나 내란죄 혐의 유무죄 결론을 떠나서 대다수 국민들의 이해를 받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169석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직자 29명을 줄줄이 탄핵하고, 예산을 마음대로 주물렀다고 해서 대통령이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했어야 했을까. G7에 초청받을 정도의 국제적 지위에 오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의회주의와 선거제도를 군홧발로 짓밟을 만큼 무엇이 그렇게 절박했을까.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선거연수원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영상이 방영됐다. 소위 ‘12.3 계엄의 밤’ 영상에선 그날 밤 11시 50분쯤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병력이 탑승한 헬기 3대가 국회의사당 뒤편 운동장에 착륙했다. 이어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해 뛰어다녔고, 소화기를 분사하는 국회 직원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된 이후인 4일 오전 1시 42분쯤에도 일부 계엄군들이 국회의장 공관에 들어갔다. 이는 추가 계엄 시도나 비상계엄 해제를 막으려했던 정황으로 의심받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 청사에선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오후 10시 33분쯤 계엄군 10여명이 정문으로 들어가 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기도 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2024.12.4./사진=연합뉴스

박상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미국헌법학회 회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헌법과 반란’에서 “12.3 비상계엄은 ‘위기정부의 일상화’ ‘예외 상태의 보편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5.16이나 5.17이란 나쁜 유산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평가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법을 정지시키려는 행위는 대통령의 권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상계엄 행위를 위헌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먼저, 헌법 12조에 명시된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않은 채 체포 또는 고속을 당하지 않는다’란 조항 때문이다. 

다만 헌법 77조에 비상계엄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정해놨는데,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돼있다. 

또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에 이어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영장 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있다.

아울러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정했다. 그리고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 89조에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들이 적시돼있는데, 이 중 대통령의 계엄과 해제를 비롯해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처분, 헌법 개정안,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 등이 포함된다.

결국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고, 검찰과 법원은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 심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일에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비상입법기구’ 쪽지가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계엄 포고령’과 함께 비상입법기구 설치는 국회를 ‘정지’시키려는 목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헌법재판관이 윤 대통령에게 건넨 “이런 이유로 비상계엄 선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거죠”라는 질문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민주당이 다수의 횡포를 일삼았다고 한다면, 그것도 국민이 선택한 선거 결과로 나온 여소야대의 구도를 지나치게 활용한 것이므로 그 정치력을 탓할 순 있어도 잘못을 물을 순 없다고 본다. 그리고 정당 및 국회의원의 정치력은 국민의 투표를 통한 선거로 심판받아야지 통치자가 군대를 동원해 제압할 순 없다. 만약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정국을 잘 이해하면서 내줄 건 내주고 받을 건 받는 협상력을 발휘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또 한걸음 진전했을 것이다. 국민이 그 시대에 맞는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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