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상문 기자] 지난 9일 이른 아침, 경주 문무대왕 앞 봉길해변에는 전국에서 몰려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표 세시풍속인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한 발길 들이었다.

해변가에는 법회를 위한 방생단을 정성껏 꾸미는 불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루떡, 과일 등 각종 음식들이 올랐지만 풍성했던 예년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다소 소박해졌다. 창원에서 왔다는 어느 보살은 "12일 눈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일찍 왔다"며 "올해는 고물가에 풍족한 법회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대신 온 마음으로 치성 드린다"고 팍팍한 살림살이를 빗댔다.

마침 고무대야에 방생 고기를 싣고 배달 온 상인도 "주문량이 작년 대비 30%가량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럭 같이 비싼 물고기가 많이 나갔는데 올해는 붕장어 등 작은 물고기를 찾는다"며 "방생 고기 판매가 한 해 농사였는데..."라며 씁쓸해 했다.

   
▲ 정월대보름은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뜨는 보름날에 풍년과 풍요를 기원하는 우리의 세시풍속이다. 사진은 재작년 봉길리 마을 주민들이 행한 달집태우기.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곳곳에서도 방생하는 이들이 눈에 띤다. 가족 수 만큼 붕장어를 구입했다는 한 어머니는 밀려오는 파도에 물고기를 힘껏 던져보지만 멀리 가지 못한 채 물가에서 바동 거린다. 

이를 눈썰미 빠른 갈매기가 재빨리 낚아채 달아나는 모습도 보였다. 멈칫 거리다 다시 강한 녀석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장면도 심심찮다. 온전히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녀석들에게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보살에게 스님은 "그것도 다 지 팔자여"한다. 

한편에서는 언제나처럼 갈매기와 사람들의 새우깡 놀이로 야단법석이다. 

   
▲ 불교에서 방생은 생명의 존엄성을 깨우치는 자비의 행위를 뜻한다. 살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공덕을 쌓거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의식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오래전부터 이곳을 드나든 지인은 "해가 갈수록 시대 인식과 생활환경 변화에 정월대보름 풍습도 예전 같이 않다"고 아쉬워 한다. 

그래도 차가운 파도에 당신 발 시린 줄 모르고, 소지에 당신 손 뜨거운 줄 모르는 어머니의 정성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한다.

   
▲ 갈매기들도 극성스러울 정도로 새우깡에 집중한다. 먹이로 길들여져 있고 고물가에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미디어펜=김상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