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과 안평대군 소재, 2025년 국립창극단의 첫 창작 창극
역사에 상상력 더한 색다른 접근...김준수·이광복·김금미 등 출연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세종대왕의 차남인 수양대군과 삼남인 안평대군. 바로 이어지는 친형제인 두 사람은 형인 문종 사후 조카 단종에게 이어진 왕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관계였다. 

결국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수양에 의해 조카와 마찬가지로 사사된 안평대군. 풍류를 즐겨서 조선 초 최고 화백 안견을 후원했고, 시서화에 능해 상당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던 그는 왜 친형과의 권력 투쟁을 벌여 그 희생양이 됐을까?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 수양은 진짜 자기 바로 아래 동생을 죽여 권력을 다졌을까?

국립창극단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보허자(步虛子) : 허공을 걷는 자'(이하 '보허자')를 내달 13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조선 제7대 왕 세조(수양대군)와 그의 권력욕으로 희생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우리 음악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를 담아 새롭게 풀어낸 창작 창극이다.

   
▲ 국립창극단이 신작 '보허자(步虛子) : 허공을 걷는 자'(이하 '보허자')를 내달 13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사딘=국립창극단


‘보허자(步虛子)’는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전래되어 고려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수용된 악곡 중 하나로, ‘허공을 걷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악곡 ‘보허자(步虛子)’는 듣는 이의 무병장수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 반면, 이번 작품에서의 ‘보허자(步虛子)’는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동경하나 그와 다르게 현실에 얽매여 발 디딜 곳 없이 허공을 거니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창극 '보허자'는 1480년(성종 11년), 계유정난 비극이 벌어진 지 27년 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안평의 딸이자 유일한 혈육이었던 무심(無心)은 변방의 오랜 노비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안평을 모시던 화가 안견(安堅)은 안평의 첩이었으나 관노비가 된 후 불의의 사고로 몸과 마음을 다친 대어향(對御香)을 찾아내 남몰래 거두고, 무심을 만나기 위해 수소문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폐허가 된 옛집 수성궁 터에서 마주쳐 회포를 풀고 추억을 나눈다. 그 가운데 안평을 기억한다는 이름 모를 나그네(안평)가 대화에 끼어든다. 나그네의 어깨에는 그의 눈에만 보이는 혼령(수양)이 붙어있다. 이들은 안평이 꿈에서 본 낙원을 그린 ‘몽유도원도’가 보관된 왕실의 원찰(願刹) 대자암으로 함께 여정을 떠나고, 그 속에서 갈망했던 옛날의 꿈과 마주한다.

극본을 맡은 배삼식 작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무참하게 꺾인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며, 각 인물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과 진흙탕 같은 현실의 무거움을 대조적으로 펼쳐낸다.

연출은 제54회 동아연극상과 제9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정이 맡았다. 이번 작품으로 창극 연출에 처음 도전하는 김 연출은 “어디에도 발 디딜 곳 없이 허공을 떠도는 ‘보허자(步虛子)’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라며 “꿈이자 희망이었던 ‘몽유도원도’를 향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도 어딘가 있을 희망을 품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대변할 것”이라고 밝혔다. 

창극의 핵심인 작창과 작곡, 음악감독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등 다수의 국립창극단 작품에 참여해 온 한승석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맡았다. 한승석은 아름다운 시어로 구성된 가사에 가야금·거문고·대금·해금·아쟁·철현금·생황 등 전통악기를 중심으로 한 선율과 장단을 더해 각 인물의 비극적이고 무거운 삶을 표현한다.

국립창극단의 세대를 넘나드는 캐스팅도 주목할 만하다. 나그네(안평) 역은 창극 '리어'에서 30대의 젊은 나이에 80대 노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호평을 받은 김준수가 맡았고, 대자암의 비구니 본공과 도창 역은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등에 출연했던 김금미가, 안평 곁에 넋으로 맴도는 수양 역은 이광복이 맡았다. 이외에도 안평의 딸 무심 역 민은경, 안평이 사랑했던 여인 대어향 역 김미진, 안평의 꿈을 그려낸 화가 안견 역의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다채로운 에너지가 무대를 가득 채울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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