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 주장 때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바꿔야 하는 민감 문제”
“국내 여론 70% 넘고 유력정치인들 주장하니 요주의 국가로 인식”
바이든 정부 말기인 1월 초 리스트 올리면서 어떤 협의나 소통 없어
원전 분야에 영향,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협정 개정 어려워질 수도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테크 등 첨단산업에서 제약 우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미국 정부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줄 우려가 있거나 정세가 불안정한 나라로 지정하는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지난 1월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됐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시리아, 이스라엘, 대만, 인도 등 25개국이던 리스트에 한국이 26번째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으로선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민감국가 리스트에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미국의 우방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은 한 곳도 없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 핵 비확산에 위협이 되거나 적성국가, 지역 불안정, 테러리즘 등을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해왔는데, 이번에 한국을 포함시킨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 에너지부가 핵 비확산에 대처하고 핵물질 생산 및 관리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국내에서 제기된 핵무장론과 관련해 핵개발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 간 워싱턴선언을 체결하고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했으나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 여론이 꾸준히 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 입장에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하는 것을 시끄러운 일로 치부한다면, 한국이 핵개발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미국으로서 동아시아 전략을 바꿔야 하는 민감한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 회장(국립외교원 명예교수)은 “국내 핵무장 지지 여론이 70%를 넘어서고, 유력 정치인들이 핵무장 주장을 펼치는 상황에서 미국이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핵개발을 감시해야 하는 요주의 국가로 인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내달인 4월 15일 민감국가 효력을 발효할 계획이며, 한국정부는 그 이전에 명단에서 빠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번주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정부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미국정부 관계기관들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다. 한미 간 에너지, 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 에너지부가 작성한 명단을 곧바로 수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이고, 다만 그 파장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관계를 볼 때 안보 문제에선 한국이 미국을 의존하는 측면이 크지만, 한국기업의 미국 투자 등 미국이 한국에서 얻는 것도 많은 만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민감국가 지정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는 하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작될 위기라는 점에 있다. 국내 전문가 일각에선 바이든 정부가 임기 말기 한국에 대해 민감국가 지정을 결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상의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관세 부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 방위비 인상 문제 등과 함께 민감국가 문제를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전망이 있다.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원전 분야에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세대 원전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등 첨단과학기술 협력에서 지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일본 수준과 비슷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를 추진해왔지만 앞으로 협정 개정을 요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연구·개발 협력에도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일단 한국의 정부 당국자나 연구진들은 앞으로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을 방문하거나 연구 협력을 진행하기 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최첨단 기술 및 민감기술에 대한 접근도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의 리더십이 취약한 시점에 이뤄졌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이후 대통령 탄핵, 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에 대한 탄핵이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우리정부는 2개월 넘게 이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가 이와 관련해 한국정부와 어떤 협의나 소통도 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 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지역을 순방하면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이날 밝혔다. 우리 국방부는 양국간 협의를 했으나 미국 측 일정 조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순연됐다“고 전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조만간 괌, 하와이, 일본,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역내 주요 미군기지와 동맹국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한국 방문은 취소한 것이다.  

전봉근 회장은 "만약 핵무장에 대한 통치자 의지와 국민합의가 있다면 풀뿌리를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공개적으로 핵개발을 천명하는 국가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감국가 지정에 정치인의 '네탓 비난 경쟁'이 아니라, 여야 협의체에서 공동 대응해야 한다"면서 "대미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미국의 한국 농축재처리 반대에 대한 극복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자체 기술역량 축적, 합법적 틀 내에서 독자 '평화적' 농축재처리 의지(군사용 절대 반대)를 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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