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견희 기자]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뷰티 업계의 관행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럭셔리 브랜드 헤라(HERA)가 정반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10만 원' 가격 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최고급 품질에 합리성을 더한 '실용적 럭셔리(Practical Luxury)' 전략으로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고객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 |
 |
|
| ▲ 롯데백화점 내 입점한 아모레퍼시픽 해라 매장 전경./사진=김견희 기자 |
23일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헤라는 이달 1일부터 주요 주력 제품의 소비자 가격을 인하했다. 브랜드의 독자 기술력을 담은 고기능성 스킨케어인 '리쥬브네이트 앰플 크림'은 기존 10만8000원에서 8만 원으로 약 26% 인하했으며, '센슈얼 파우더 매트 리퀴드' 역시 4만5000원에서 4만 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고객 유입 장벽 완화와 브랜드 기술력에 대한 고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이처럼 럭셔리 브랜드가 성분 리뉴얼 없이 권장소비자가격 자체를 인하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가격 인하가 원가 절감의 결과가 아닌 추가 수요 창출에 더욱 초점을 뒀기에 가능한 결정이다. 원재료와 물류비용이 상승하는 환경 속에서 마진을 깎아 소비자 경험 장벽을 낮추고 구매 주기를 앞당기려는 전략으로도 분석된다.
또 가격 인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서울 뷰티'를 경험하고 싶은 젊은 층의 진입 장벽을 낮춰 브랜드 팬덤을 공고히 하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최근 일본 내 한국 화장품 수입액이 하이엔드 화장품 브랜드를 대거 보유한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서울리스타(SEOULISTA)'를 상징하는 헤라의 쿠션과 립 제품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하며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최근 주력하고 있는 '실리적 럭셔리' 전략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북미 화장품 수입국 점유율에서도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기록 중이며,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브랜드인 라네즈(LANEIGE)의 북미 작년 매출은 전년비 40% 성장한 7300억 원을 기록했다. 라네즈가 급성장하는 흐름 역시 하이엔드와 저가 브랜드 사이인 합리적 프리미엄을 겨냥한 아모레퍼시픽의 시장 공략법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 |
 |
|
|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설화수 매장 전경./사진=김견희 기자 |
◆ 주력 유통 채널·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변화
가격 인하는 최근 프리미엄 시장의 보릿고개 영향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과 면세점의 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2~4%대라는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무른 반면, 올리브영 등 H&B(헬스앤뷰티) 스토어와 이커머스 매출은 15~20%가량 급성장하며 시장의 주도권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급변하는 유통 채널과 소비 트렌드 속에서 아모레퍼시픽 헤라는 가격을 조정을 통해 H&B와 이커머스 주요 고객층인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가 단품 스킨케어 구매 시 느끼는 심리적 가격 마지노선 을 맞췄다. 특히 5만~8만 원의 금액은 모바일 선물하기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골든 프라이스' 구간이기도 하다.
실제 유통 업계에 따르면 모바일 선물하기 플랫폼 내 럭셔리 뷰티 거래의 약 60% 이상이 5만 원에서 8만 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만 원을 넘어서는 순간 선물하는 이와 받는 이 모두 부담을 느끼는 격식형 선물로 분류되는 반면 5만~8만 원대는 명품의 품격과 실용성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최적의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경쟁사 LG생활건강은 여전히 ‘리뉴얼 없는 가격 인하’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주력 브랜드 후의 '궁중 럭셔리'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가격 인하보다는 제품의 효능 강화와 프리미엄 패키징을 통한 가치 제고에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브랜드 자존심을 지키면서 프리미엄 시장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진입 장벽을 낮춰 파이를 키우려는 아모레퍼시픽의 실리주의와는 대조를 이룬다.
업계 관계자는 "샤넬, 디올 등 수입 화장품 브랜드가 증정품을 늘려 체감 가격을 낮추는 우회 전략을 쓸 때 헤라는 제품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라며 "브랜드 자존심보다 실질적 선택을 받겠다는 아모레퍼시픽 헤라의 승부수가 럭셔리 뷰티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