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애들 말 듣고 막(마지막) 학기 전에 휴학 한 번 할걸", "군대 전역하고 칼복학 하지 말고 토익이나 더 올릴걸", "'엣지 있는 스펙 하나 없는데 졸업은 왜 해 가지고…"
대학 졸업생 K씨(27)는 요즘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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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채용계획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이같은 사정에 취업준비생의 심리압박은 크다. 어려운 업황 속에 은행권은 영업력을 강조하면서 인재상의 변화도 예상되고 있다./연합뉴스 |
어김없이 새 봄은 찾아오고 개강을 맞은 캠퍼스에는 젊음의 기운이 넘실거리지만 3월의 설렘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청춘들도 많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어른이 돼버린' 졸업생들이다.
"아무래도 불안하죠. 더 이상 학생이 아닌 거잖아요. 핑계를 댈 수조차 없어진 거죠."
성실하게 한 학기 한 학기 내공을 쌓듯 학교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K씨였지만, 직장을 얻지 못한 채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남는 건 불안함 뿐이다. 학교라는 울타리, 실수를 해도 용서해줄 보호막은 이제 사라졌다.
다른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올해 유독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상반기 채용계획 자체가 불확실한데다가 업계 분위기가 바뀌면서 은행권이 원하는 인재상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용계획 "아직은 모릅니다"
제1금융권에서 올해 상반기 채용이 가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곳은 우리은행 뿐이다. 지난 2월 정규직 140명을 채용키로 한 우리은행은 현재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까지 완료한 상태다.
반면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국민은행의 경우 아직 상반기 채용계획을 발표하지 않아 취준생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취준생들이 운집한 취업카페에는 "뽑는지 안 뽑는지 그것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글이 흔히 올라오지만, 아무리 문의를 해봐야 은행 관계자들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반기 채용계획에 대해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 관계자는 "매년 상반기 채용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올해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히면서 세부사항은 이달 둘째 주 무렵 확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KEB하나은행의 경우 상반기 채용이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작년 외환은행과의 통합 직후 하반기 신입행원을 500명이나 채용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에 대한 업무배치가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된 상태라 연이어 상반기 채용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 상반기 120명을 채용한 국민은행의 올해 계획도 아직 확정된 게 없다. 2015년 이전까지는 상반기 채용을 하지 않았다는 점, 작년 상반기에도 4월 초가 돼서야 채용계획이 나왔던 점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3월 19일부터 상반기 채용 원서접수를 시작했던 기업은행도 아직까지는 상반기 채용 여부와 규모를 결정짓지 못했다. 다만 특성화고 졸업자 대상 준정규직 채용은 00명 예정으로 현재 시기 조율 중이다.
ISA? 해외주식펀드? 상황 변화에 인재상도 변화하나
채용계획이 나오지 않는 것만큼이나 취준생들의 심리를 압박하는 요인은 또 있다. 은행들의 '인재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와 비과세 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 등을 둘러싼 은행권의 고객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영업력'을 부각해야 취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은행권이 이른바 '스펙'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경향은 이미 작년 공채시기에도 포착됐다. 2015년 채용된 신입행원들 대다수는 현재 영업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애초 채용을 할 때부터 '현장 맞춤형 인재'를 뽑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채용전형이 진행 중인 우리은행도 영업점에서 개인고객을 담당하는 개인금융서비스직군으로 140명을 선발 중이다.
전공을 불문한 '영업력'이 강조되고 있다 보니 상경계열 출신이 은행권 취업에 유리하다는 고정관념도 점점 '옛말'이 돼가고 있다. 스펙이 화려한 '책상형' 지원자보다는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현장형' 인재가 합격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예체능계나 공학계열 전공자도 얼마든지 은행권 취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성장률은 둔화되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요즘 상황에서 회사가 신입사원들에게 바라는 건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라기보다는 '고객 한 명'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면서 "어려운 여건이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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