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적극 개입 "금리단층 해소" 기대
[미디어펜=이원우 기자]화제의 예능 '프로듀스 101'에는 101명의 소녀 연습생들이 등장한다. 걸그룹으로 데뷔해 스타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평가를 받으며 '등급'을 낙점 받는다. 이름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등급, 그러니까 자신이 A등급이냐 D등급이냐다. 사람에게 등급을 부여하다니 냉혹하기 짝이 없는 경쟁의 현장이다.

하지만 K팝에서만 그럴까? 금융시장 또한 당신을 등급으로 분류한다. 특히 사정이 어려워져 대출을 받기 위해 금융기관과 접촉하려면 '신용등급'이라는 마의 벽을 통과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기 위해서 이름보다 중요한 건 나의 신용등급이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금리 신용대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임종룡 위원장 모두발언 및 간담회 전경 모습./금융위원회

신용조회회사(CB)가 부여하는 신용등급은 총 10단계로 나뉜다. 숫자가 낮을수록 높은 등급이다. 과거의 신용거래 경험이나 현재의 신용거래 상태를 바탕으로 매겨지며 부채수준이나 연체정보, 신용형태, 거래기간과 관련이 있다. 액수보다는 상환기일, 그러니까 적은 액수라도 이자나 카드결제 납부액을 연체하지 않는 것이 신용등급에선 더 중요하다.

등급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등급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야 한다. 전자를 저금리, 후자를 고금리라고 한다. 2015년 말 NICE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금융소비자 1498만 명 중에서 1~3등급은 534만 명, 4~7등급은 698만 명, 8~10등급은 266만 명이다. 언제나 그렇듯 중간단계 소비자가 가장 많다.

중간 신용자도 저등급 신용자와 '똑같은 취급'

1~3등급 대출자가 5% 미만의 저금리를 적용받는 것은 이해가 간다. 8~10등급 소비자가 고금리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정은 딱하지만 사리에는 맞는 일이다. 그런데 4~7등급 소비자의 경우는 어떨까?

중간 단계 대출소비자인 이들에게는 당연히 '중간 단계의 금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4~7등급 소비자 역시 8~10등급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20%가 넘는 고금리를 감당하는 상황이다. 

2015년 9월말 기준 개인신용대출 평균금리를 보면 이와 같은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등급 대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은행의 평균금리는 4.4%, 상호금융이 4.6%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은행권에서 거절당한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여신전문업체의 평균금리는 18.1%, 저축은행은 25.0%, 대부업체는 30.2% 수준으로 갑자기 숫자가 치솟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중간단계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도 낮은 단계 등급을 가진 사람과 같은 수준의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처럼 중간 단계의 금리가 시장에서 실종돼 버린 상황을 금리의 양극화, 더 어려운 말로는 '금리구조의 단절화'라고 부른다.

   
▲ /자료=금융위원회


2012년 말과 비교했을 때 개인신용대출 규모는 223조원에서 2015년 말 258조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3등급 고신용자를 제외한 중·저 신용자 대상 대출은 오히려 5조5000억 원이나 줄었다. 비중으로 봤을 때도 3년 간 1~3등급에 대한 대출비중은 69%에서 79%로 늘었다. 금융기관들이 고신용자 대출에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출 부실을 걱정해야 하는 금융기관들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자금 사정이 어렵고 신용등급도 높지 않은 이들로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금을 융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현실을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신용자가 아닌 중간등급 신용자들까지도 똑같이 기관의 불신을 받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작년부터 금융 당국이 중신용자 대출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에는 위와 같은 맥락이 존재한다. 특히 은행과 대부업체 사이에서 '허리' 역할을 맡아주는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기대가 큰 상황이다. 

당국과 저축은행중앙회는 이미 2013년 9월부터 10~20% 초반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의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신용평가시스템(CSS) 고도화 추진 등의 계획을 함께 입안한 지도 어느덧 2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상품 출시는 증가… 내실은?

당국이 중금리 대출에 드라이브를 건 결과 시장에서 중금리 대출상품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은행은 작년 5월 '위비뱅크'를 런칭하면서 은행권 최초 중금리 대출상품인 '위비모바일대출'을 선보였다. 

'국민MC' 유재석이 광고에 출연한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 출시 이후 인지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이 상품은 지난 2일 금융위원회가 선정한 '중금리 신용대출 우수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허나 저축은행으로 초점을 바꾸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상품 개발부터 고객 확보까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저축은행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 /사진=SBI저축은행


SBI저축은행의 모바일신용 '사이다'를 위시해 JT친애저축은행의 '원더풀WOW론', 신한저축은행의 '신한스피드허그론', 웰컴저축은행의 '웰컴척척대출', KB저축은행의 '착한전환대출' 등의 상품이 출시됐지만 대출 총액, 1인당 대출한도, 신용등급분포 등의 측면에서 아직까지는 아쉽다는 분석이다.

저축은행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11% 수준의 연체율이나 모집 비용 등에서 은행에 비해 대출원가가 높은데다 구조조정 이후 보수적 운영 분위기가 확산된 상황이라 여전히 금리인하에는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을 비롯한 비은행권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모색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중금리 신용대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는 금융위원회를 위시한 당국의 고민과 대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은행연합회·저축은행중앙회·서울보증보험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울보증보험, 은행연합회, 저축은행중앙회, 농협 등 6개 시중은행과 신한저축 등 5개 저축은행이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상반기 내 중금리 대출상품에 대한 세부구조를 공동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에 서명한 것이다.

특히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리스크관리에 강점이 있는 서울보증이 참여한 만큼 더욱 체계적인 신용평가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며 서울보증보험의 참여에 방점을 찍었다. 보증보험의 참여로 대출 부실화에 대한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다. 은행과 저축은행이 영업을 연계하도록 활성화 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목표로 세우고 있는 중금리 대출상품 시장규모는 1조원이다(은행 5000억 원, 저축은행 5000억 원). 추후 운용성과를 보아가며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상품 출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 유도하고 있는 '금리단층 해소'의 숙원이 과연 올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그 결과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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