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곳 중 2곳 '초고위험' 없어, 안전 vs 공격 선택
[미디어펜=이원우 기자]본격적인 이사(ISA)철은 지금부터다.

미혼 직장인 나결혼(33, 남)씨는 최근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금융당국이 국민들의 '재산증식 프로젝트' 일환으로 야심차게 도입한 ISA가 지난달 14일 출시됐을 때부터 주의 깊게 지켜봐 왔다.

의무가입 기간이 5년이라는 점이 약간 부담스러워도 어차피 결혼자금을 준비하면서 '긴축재정'을 하는 중이라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신탁형'이었다. 몇 년 전 소액의 주식투자를 했다 쓴맛을 본 경험이 있을 뿐 투자경험이 거의 없는 나씨로서는 투자자가 모델포트폴리오를 직접 구성해야 하는 신탁형ISA 가입이 좀처럼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나씨에게 11일부터 은행들이 내놓기 시작한 일임형ISA는 솔깃한 소식이었다. 돈만 맡기면 은행이 알아서 자산을 굴려주는 일임형ISA는 예금 금리는 초과하면서도 너무 위험하지 않은 수준의 결과를 원하는 나씨를 위한 상품이나 다름 없었다. 나씨가 투자할 자금은 5년에 걸쳐 총 1000만 원 수준이다.

이날부터 일임형ISA를 내놓은 은행은 신한, 국민, 우리, 기업은행 등 4곳이었다. 나씨는 이날 하루 점심시간을 이용해 네 곳 은행에 모두 들러 자신에게 최적화된 ISA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우리‧국민은행 "우리 국민들, 공격적으로 해 보세요"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우리은행이었다. 우리 측이 준비한 '메뉴판', 그러니까 모델포트폴리오는 총 10가지였다. 크게 분류하면 안정형‧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공격형 등 총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은행 창구직원은 "11일 출시된 4개 은행 일임형 ISA 중 가장 공격적인 만큼 가장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보셔도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4개 은행 중에서 포트폴리오 구성계획을 가장 세부적으로 밝힌 편에 속한다. 

   
▲ 표=우리은행


결혼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나결혼 씨의 입장에서 국내우량주와 글로벌우량주를 중심으로 투자하는 '공격형'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위험중립형' 중에서도 채권형 펀드를 기반으로 해외주식형 펀드에 30% 분산투자하는 '글로벌30 ISA'에 가장 시선이 갔다. 공모주, 롱숏, 해외채권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공모주알파ISA'도 괜찮아 보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국민은행의 메뉴판은 초저위험보다 초고위험까지 총 10가지로 우리은행보다 다양했다. 세부적으로는 고수익추구형, 적극수익추구형, 중수익추구형, 안정수익추구형, 안정형으로 나뉘었으며 안정형은 제외한 4개 유형은 다시 A형과 S형으로 나뉘었다. A형이 보다 큰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다.

   
▲ 그림=국민은행


국민은행 창구직원은 나결혼 씨의 상황설명을 듣더니 '적극수익추구형'을 추천했다. 투자금액이 500만 원 수준으로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포트폴리오를 선택해 만족스러운 수준의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대신 위험수준이 높아질수록 은행에 납부해야 하는 수수료가 올라간다. 국민은행은 안정형 수수료 0.1%부터 고수익추구형 수수료의 경우는 0.6%까지 수수료를 책정했다. 국민은행은 차별화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전문기관인 KG제로인과 전략적 업무제휴(MOU)를 체결함으로써 은행에게 다소 낯선 자산운용에 대한 전문성을 보강했다.

기업은행‧신한은행 "위험은 적당히, 수익은 만족스럽게"

다음으로 찾은 곳은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이 준비한 '메뉴판'은 총 7가지. 이전 방문한 은행에서 볼 수 있었던 '초고위험' 상품이 신한은행에는 없었다. 은행 창구직원은 "30대 고객의 입장에서 5년은 엄청나게 중요한 기간"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고객에게 주력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원칙에 입각해 신한은행은 우선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중심으로 모델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향후 파생결합증권 등으로 상품군을 확대할 방침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안정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할 방침이다. 

   
▲ 신한은행 한 지점에서 고객들이 투자상담을 받고 있다. /미디어펜


신한은행은 이날 글로벌 투자리서치 기업인 '모닝스타'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계량분석 리서치 서비스를 제공받아 펀드의 선정과 자산배분 프로세스에 적용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오는 15일에는 인터넷‧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에서의 일임형 ISA 가입 시스템을 오픈하고, 이달 중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도 개시한다.

마지막으로 찾은 기업은행 또한 안정 위주의 메뉴판을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신한은행에 비해 상당히 세부적인 포트폴리오가 이미 완성돼 있었다. 

창구직원은 나씨에게 초저위험, 저위험 스마트, 저위험 플러스, 중위험 스마트, 중위험 플러스, 고위험 스마트, 고위험 플러스로 총 7개의 모델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초고위험의 경우 안정성을 고려하여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큰 위험을 감수해 스릴 있는 투자를 할 셈이라면 굳이 5년씩 자금을 묶여가며 ISA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나씨로서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 표=기업은행


이 중에서 기업은행은 나씨에게 MMF 10%, 국내채권형 펀드 40%, 국내성장형 펀드 30%, 국내가치형 펀드 10%, 해외선진국 펀드 10%로 구성된 '중위험플러스' ISA를 추천했다. 

약간의 위험을 더 감수해도 좋다면 MMF 10%, 국내채권형 펀드 10%, 해외채권형 펀드 10%, 국내성장형 펀드 30%, 국내가치형 펀드 10%, 해외선진국 펀드 20%, 대안자산 펀드 10%로 구성된 '고위험 스마트 ISA'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추천 받았다.

"재산 '증식'까지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나결혼 씨가 4개 은행창구 직원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투자금액이 그리 크지 않을 경우 ISA를 통해 '거금'을 벌어들일 수는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의무가입기간(5년)과 투자금액 제한(연2000만원 이하) 등 제도적 제약에서 기인한 바 크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표방하고 있는 '국민 재산증식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가 여러 제한조치들로 인해 서민들에게는 '남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예금 이자를 초과하는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으면서 비과세 혜택까지 받는다는 장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총 자산의 일정 부분을 ISA에 '일임'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좋은 재테크 전략이라는 조언은 유효해 보였다.

나결혼 씨는 네 곳 중 한 은행에 다시 방문해 일임형ISA 가입 서명을 했다. 오는 6월 14일에 금융사별 ISA 운용 수익률이 공개되는 만큼, 일단 이사(ISA)한 뒤에 수익률을 확인하고 계좌이동제를 이용해 성적이 더 좋은 금융사로 다시 한 번 '이사'하는 것도 영리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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