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금융노조 각 은행지부가 연말 임단협을 준비하는 가운데 '성과연봉제'는 협상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대신 노조위원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띠면서 사측에 대한 공통투쟁보다는 '내분' 양상으로 진입하는 모양새다. 은행권 특유의 파벌문화가 선거전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주요은행들이 내년 임금단체협상 안건을 선별하는 가운데 '성과연봉제'는 협상 테이블에도 오르지 않고 있다. 현재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이 임단협을 앞두고 있지만 두 회사 모두 안건에서 성과연봉제를 제외했다. 다른 은행들 역시 성과연봉제 논의는 차후로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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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노조 각 은행지부가 연말 임단협을 준비하는 가운데 '성과연봉제'는 협상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대신 노조위원장 선거가 과열 양상을 띠면서 사측에 대한 공통투쟁보다는 '내분' 양상으로 진입하는 모양새다. /미디어펜 |
성과연봉제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업계 최고의 화두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열기가 식은 이유로는 '최순실 게이트'가 첫손에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던 모든 사업이 올스톱된 것처럼 성과연봉제도 마찬가지"라면서 "당국 입김이 약해진 상황에서 사측도 굳이 성과연봉제를 확산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과연봉제에 극렬 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금융노조 측은 내심 이러한 분위기를 반기는 모양새다. 당초 온건 성향으로 분류되던 금융노조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정도로 성과연봉제는 민감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사안의 민감성과는 별개로 성과주의에 대한 금융노조의 투쟁력은 좀처럼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지난 9‧28 총파업의 경우 금융노조는 일찍부터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노조의 통일된 목소리를 들려주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시중은행 노조원의 상당수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금융노조의 단결력에 문제가 생긴 데에는 연말을 전후로 각 지부 노조위원장 선거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는 점이 이유로 손꼽힌다. 현재 금융노조 위원장 선거(내달 20일)를 위시해 국민은행, 우리은행, 씨티은행이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 도전한 후보들 대부분이 '성과연봉제 저지' 구호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나아가 상대방 후보들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이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도 자주 나온다. 씨티은행 지부는 지난 15일부터 노조 홈페이지를 아예 폐쇄했다. 당선자가 확정될 때까지 흑색선전을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노조게시판을 막는다고 해서 폭로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익명 어플 등을 통해 얼마든지 '복마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익명 어플 '블라인드'는 이미 각 후보들의 폭로 게시판으로 변질된지 오래"라면서 "어떻게 한 배를 탄 사람끼리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은행 노조원들의 공격 수위가 유독 강력한 이유는 시중은행 특유의 '파벌문화'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의 은행들 다수가 크고 작은 합병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벌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작년까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으로 나뉘어있던 두 조직이 합쳐져 탄생했다. 함영주 은행장의 리더십으로 성공적인 통합을 해냈다는 분석이 다수지만, 두 조직의 분위기가 워낙 달라 완벽한 융합은 요원하다는 비판도 있다. KEB하나은행 한 관계자는 "내년 1월 통합노조가 출범하지만 두 조직의 화학적 통합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들은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하는 상업은행-한일은행-한빛은행 등의 파벌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이광구 은행장의 경우 4전 5기 끝에 민영화를 성공시키는 등 업적이 많음에도 상업은행-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연임 비판론이 존재한다.
우리은행 노조선거 또한 과열 양상으로 진입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정 후보의 인사 청탁설이나 과거 비리사건 연루 경력 등을 문제 삼아 비방전을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노조 게시판을 실명제로 전환하면서 게시물이 줄긴 했지만, 내달 6일로 예정된 최종 선거까지 익명 어플 등을 활용한 흑색선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성과연봉제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지자 금융노조 각 지부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주로 급속하게 분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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