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누구도 예상 못한 '신의 한 수'" 평가
현대·기아자동차 완성차 본연의 경쟁력 유지 가능
대규모 빅딜, 그룹사 공동 투자 인수 방식 확보
적법 재편비용 부담, 대주주 사회적 책임 의지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현대차그룹이 28일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왜 지주회사 전환이 아닌 사업 지배회사 체제로 고개를 돌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심이 집중된 만큼 그 동안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수 많은 시나리오를 그려왔다.

   
▲ 앞으로 변화되는 현대자그룹 지배구조. /사진=현대차그룹


단순한 방안으로 거론되던 안은, 기아차가 보유 중인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대주주가 매입해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데다가 일각에서 말하는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 들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른 안은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3사를 투자 및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 한 뒤, 투자 부문을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공정위 역시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당연히 지주사 시나리오로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모듈과 AS부품 사업부문을 떼어낸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출자구조 재편안을 선택했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을 접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완성차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지속 유지하고자 하는 차원이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 완료 이후에도 현대차그룹의 핵심 사업인 완성차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계열사는 현대차와 기아차다.

현대·기아차를 각각 투자 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하는 방안은 두 회사의 미래 사업 확장성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투자 부문을 따로 분리해 반쪽 짜리로 운영하는 곳은 없다.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유망 업체 인수에 뛰어들어 혁신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풍부한 자금 유동성과 높은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스스로 미래 사업 확장 가능성을 차단할 이유가 없다.

현대·기아차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주도적으로 사업을 확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특히 더욱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간 경쟁에서 한 발 앞서나가려면 현대·기아차가 완성차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그대로 갖추는 것이 그룹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최적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유는 지주사 체제 전환이 미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수 있는 대규모 M&A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되면 지주회사 체제 내의 자회사 등이 공동 투자해 타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수하려는 기업 규모가 크면 클 수록 한 개 계열사가 인수 부담을 모두 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지난 2011년 현대건설을 인수할 당시 현대차 21.0%, 기아차 5.2%, 현대모비스 8.7% 등 3개 계열 회사가 공동으로 현대건설 지분을 인수한 바 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이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망사업 인수, 합병은 필수 전략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존속 현대모비스는 그룹 내 미래기술 리더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미래기술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와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합병 현대글로비스 역시 안정적인 수익사업 확보를 통해 투자 재원 확충이 가능해지고,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등 신규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각 그룹사들이 미래 혁신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유기적 체계를 마련하게 됐다.

세 번째 이유는 재편 취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갖기 위한 차원이다. 이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현대차그룹 대주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지주사 전환 시 불거지게 되는 대표적 논란은 대주주의 현물출자와 자사주 활용, 과도한 브랜드 사용료 수취 등이다.

현대차그룹은 편법적 방법을 지양하고 대주주가 지분거래에 따른 거액의 세금을 모두 납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수립했다.

현대차그룹은 대주주 및 계열사 간 주식거래가 완료될 시점까지 대주주가 내야 할 양도소득세만 약 1조원 이상의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대주주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공정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다.

불필요한 소모성 논란을 최소화하고 현대차그룹의 재편 취지에 대한 진정성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분할, 존속회사 현대모비스의 외양을 더욱 키워 수년 내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재 현대차그룹의 출자구조상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식 소유를 통해 회사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배회사와 성격이 유사하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총자산이 5000억원을 초과하고, 자회사 총주식가액 합이 자산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현대자동차 주식 20.8% 등을 보유하고 있다.

존속 현대모비스의 총자산(18조8000억) 중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현대차 등 총 지분가액은 약 4조1000억원으로 그 비율이 22%에 그쳐 50%에 달하기는 부족하다.(※ 총 지분가액 기준 : 모회사가 최대 출자자인 국내 계열회사의 장부가액)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새로 개편될 출자구조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 사업을 중심으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즉 '사업→계열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사업구조를 통해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계열사 간 자율, 책임경영 체제를 확보하는 등 미래 지속 성장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 전략이다.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는 완성차 부문이 사업 위상과 경쟁력을 제고하게 되면 그 효과는 전방의 사업 지배회사와 후방의 계열사에 고루 확장되는 '전후방 사업연계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이번 재편안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신의 한 수'"로 평가하며 "대주주가 지분거래를 통해 거액의 세금을 모두 지불하며 편법을 배제한 방식은 주주들에게 앞으로 주주 친화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시그널로 인식돼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