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유진 기자] 지난 13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A대부업체 앞에서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려는 한 법인사업자와 만났다. 그는 그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땅을 담보로 약 3억원의 대출을 받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서 강남까지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대출이 실행되면 이자를 빼고 지급해야 할 선수수료만 6%에 달했다. 눈 깜짝할 사이 1800만원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문득 그가 돈을 갚지 못했을 때 짊어져야 할 채무독촉 모습이 떠올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에는 상담을 받아봤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불가능 헀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현장에 오기 전 '대부업체 앞에서 정부의 서민금융 상품 홍보 전단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득 지난달 8일 열린 '2018 서민금융박람회'의 모습도 그러졌다. 당시 현장에 가지 않았지만 본지 후배 기자의 기사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느낀 터였다.

그날 한 여성 금융소비자는 일일 상담사로 나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대훈 NH농협은행장에게 '살려고 왔다'며 제도권 대출을 받을 수 있길 호소했다고 한다.

자영업자인 그는 불법 사금융 중 하나인 '일수'를 이용하는 서민이었다. 과거 보증으로 인한 채무 경험, 대출 연체 기록 등으로 제도권 금융 이용이 불가능했고, 그의 하소연에 윤 원장과 이 행장은 '안전망대출', 민병두 의원은 '미소금융'을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A씨는 '그런 걸 몰라 여기에 온 게 아니다'며 결국 소득 없는 상담을 마치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처지에도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 업체들이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최근 정부는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대신 '서민금융'에 은행 자금이 흘러가고자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올해까지 대출이 어려운 중·저신용자를 위해 안전망대출 등을 출시하고, 은행마다 신용등급이나 소득 등 정량적 평가 외에 상환 의지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로 보면 노력이 무색하게도 실적이 저조하다. 이날 정부 관계자들이 A씨에게 추천한 서민금융 상품 외에 햇살론 등과 같은 취급 실적을 살펴보면 저신용자에게 지원된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다.

'3%·14%·22%…' 금융권이 서민금융 상품을 운용하면서 8등급 이상 저신용자에게 대출한 취급 실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서민금융 대출 실적에서 1~6등급 이용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새희망홀씨 80%, 햇살론 47%, 바꿔드림론 24%다. 서민을 돕겠다는 상품 운영 취지와 달리 고·중신용자에게 혜택이 몰리고 있다.

결국 제도권에서 밀려난 이들이 택하는 곳은 대부업체나 '일수' 같은 불법 사금융 업체인데, 요즘엔 그마저도 쉽지 않아 우려가 제기된다.

대부업체의 집결지라 불리는 강남에는 최근 대형 대부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는 최근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대부업체의 자본금 요건을 확대하고, 지자체별로 법정최고금리를 어기는 불법 사채업자를 단속 중이다.

대부업의 영업 환경이 어려워지자 러시앤캐시나 산와머니, 미즈사랑 등 대형업체들은 잇따라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을 선언했는데, 문제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영세 대부업체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역세권 오피스텔 등에서 현판도 없이 고금리 일수와 불법 수수료 편취 등에 나서며 서민들을 옥죄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인데, 금융당국은 이러한 상황에도 '서민금융박람회'나 '서민금융 지원 우수기관 선정' 등의 행사만 벌이며 자축하고 있다.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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