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무력화'로 법치주의·죄형법정주의 훼손…권력기관간 견제와 균형 무너뜨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고용노동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속도 조절' 지시에도 20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강행하면서, 사실상 대법원 판례를 무력화해 3권분립 원칙과 법치주의 이념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시행령 개정안이 차관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20일 전국기관장회의에서 "최저임금 위반을 피하기 위해 현장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면 적절한 시정기간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법리적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배치되면서 편법이라는 법조계 지적이 나온다.

24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시행령 개정안이 확정 통과되면, 근로자의 최저임금 위반 여부 판단 기준시간에 모든 유급휴일을 포함하게 된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면 실 근로시간을 비롯해 법정 주휴시간 및 노사가 약정한 휴일(토요일)도 기준시간에 들어가 연봉 5500만 원 이상 고연봉자라도 최저임금법 위반 대상이 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실제 근로하지 않았어도 임금을 지급(주휴수당 등)하는 가상의 시간까지 '분모'에 포함시켜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을 20~40% 저평가되게 만든다.

기존 최저임금법 체계를 준수하던 사업주들도 당장 다음달부터 임금을 20~40% 올려주지 않으면 범법자가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은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노동시간'까지 행정 자의적으로 포함했다"며 "객관적이고 단일하게 설정되어야 할 정부의 단속기준이 '노조 힘'에 따라 기업별로 달라져 고임금 근로자까지 위반 대상이 되게 만드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 제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고용부의 시행령 개정안 강행에 대해 "최저임금법이 위임한 한계를 넘어섰고 국회 입법사안을 손쉽게 시행령으로 풀려는 편법"이라며 "법 위반시 징역이나 벌금이 부과되는 형사법적 사항이라 국회에서 입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 급여 전체를 비교대상 임금 범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한 2007년 대법원 판결은 확고한 판례"라며 "지난 6월 대법원은 실근로시간만으로 비교대상 임금을 나누면 되는 것이고 근로제공 없는 '유급 인정' 주휴시간이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 사진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월28일 부산 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고용서비스 기능강화를 위한 고용센터 현장간담회'를 갖는 모습이다./자료사진=고용노동부 제공

검찰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애초에 최저임금법 위반은 형사처벌 규정이 있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행정부가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시행령을 개정해 삼권분립 원칙과 법치주의 이념을 훼손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지시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반대하고 나섰는데 고용노동부가 이를 강행하는 것은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법령에 대한 최종 해석권한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에 있다"며 "지난 10월 대법원 확정 판결과도 배치되어 위헌 소지가 크고 고임금 근로자를 최저임금 수혜자로 만들어 '약자 보호'라는 법 취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일수록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임금 수준을 밀어올리기 쉬워져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며 "정부는 무리한 산정방식을 무효화시킨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받아들이는게 순리"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11일 고용부 업무보고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실태조사를 지시했고 18일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도 "정부가 산업계 애로사항을 들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고용부는 행정지도 관행을 내세우며 시행령 개정을 강행했다.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나라 경제가 망하든 말든 대통령과 대법원이 뭐라고 하든 말든 눈치도 없고 요령도 없다"며 "근본도 없는 배짱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따르는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도 이달말 종료된다. 이에 따라 열흘뒤인 내년 1월1일부터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벌금 2000만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기업들이 범법자로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함께 정부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는 무력감까지 느낀다"는 경영계 호소가 절박하게 들린다.

정부가 오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 통과해 기업들에게 '인건비 폭탄'을 떠안길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