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도·위치와 거리·설비·교통 편리성 등 모든것이 마케팅과 연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이제, 소비자들이 작품과 만나는 장소에 대해 알아보자. 소비자들이 문화예술작품과 만나는 모든 접촉점을 장소라고 한다. 장소가 얼마나 편리한지에 따라 문화예술작품의 공연이나 전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작품 감상의 경험을 통해 소비자에게 작품이 유통되도록 한다. 장소는 작품과 서비스가 고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이자 유통경로이므로, 관객들의 티켓 구매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예술기관의 수익 규모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일반 마케팅에서의 유통경로와 문화예술 마케팅에서의 장소는 영어로 같은 단어(Place)를 쓴다. 그렇지만 유사해 보이면서도 개념적 차이가 있다. 일반 마케팅에서 말하는 유통경로는 장소를 거쳐 유통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비해 문화예술 마케팅에서의 장소란 소비자들이 작품과 만나는 접촉점이다. 장소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두 번째 성공요인으로 지적될 정도로 중요하다.

관객이나 관람객 입장에서는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같은 장소가 문화예술작품을 경험하는 공간적 장소이지만, 작품의 공급자인 예술가나 문화예술기관과 단체의 입장에서는 장소가 작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유통경로이다. 관객이나 관람객의 접촉 경험을 통해 작품의 감상이라는 정서적 교류(유통)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음향이나 조명 같은 시설이나 장소의 규모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수익 규모를 좌우한다.

문화예술 마케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장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을 갖는다. 첫째, 시설의 의미로, 관객이나 관람객들이 사용하고 느끼는 설비들이다. 둘째, 공간의 의미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문화예술작품을 제공하는 모든 곳이다. 셋째, 접점의 의미로, 티켓을 판매하는 장소를 비롯해 소비자와 작품이 만날 수 있게 하는 모든 마케팅 수단이다.

문화예술작품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장소의 유명도, 장소의 위치와 거리, 조명과 음향장비 같은 시설의 우수성, 좌석과 부대시설 같은 시설의 편안함, 편리한 대중교통 여부도 소비자의 티켓 구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시설, 공간, 접점이 결집된 장소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겠다.

   
▲ 프랑스 니스 '샤갈미술관' 입구에 선 필자(2018).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프랑스 니스(Nice)에 있는 샤갈미술관(Musée National Marc Chagall)은 니스역에서 택시를 이용해 10분, 걸어가도 30분 거리에 있다. 시설, 공간, 접점이 결집된 이 미술관은 마크 샤갈의 걸작 중에서 종교에 관한 작품만을 전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966년에 샤갈 부부가 프랑스 정부에 작품을 기증한 뒤 그 작품들을 모아 1973년 니스에 개관했다. 450여점의 미술품 중에서 중앙 홀에 전시된 '인간의 창조'나 '노아의 방주'를 비롯한 구약성서에 관한 연작 유화 17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시설, 공간, 접점의 장점을 잘 살린 이 미술관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관람객들로 붐비는 날이 많다.
 
박물관학 전문가 이보아 교수에 의하면, 저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공통적인 특성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작품이나 유명 작가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소장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미학적 가치가 탁월한 건축물이 있어 그 장소에 대한 인지도가 높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때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이나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꼽는 데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각종 부대시설에서 주요 수입원을 창출하고, 호텔 숙박과 쇼핑 등 관람객의 소비를 촉진해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야경 (2017). /사진 출처=David Heald ©SRGF, NY. 김병희 교수 제공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저명한 미술관에 필요한 공통적인 특성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곳은 미국 현대 미술의 중심지이자 20세기의 건축 예술을 대표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건물은 독일계 이민자인 구리 재벌 솔로몬 구겐하임이 의뢰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943년에 설계했고 1959년에 완성했다.

달팽이 모양의 외관과 계단 없는 나선형 구조가 인기를 끌어 개관 직후부터 뉴욕의 명소가 되었다. 이 미술관에는 20세기의 비구상 및 추상계 작품을 위시해 피카소의 초기작품과 클레, 샤갈, 마르크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칸딘스키 컬렉션 180점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후 1997년에 독일의 베를린과 스페인의 빌바오에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개장했고, 1998년에는 온라인으로 구겐하임가상박술관을 오픈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공연장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 정부에서도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관객과 관람객의 발길이 뜸한 곳도 있다. 이런저런 장소 요인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이때는 장소와 관람객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장소 요인을 강조하며 장소의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활동도 필요하다. 시설, 공간, 접점이 결집된 장소의 가치도 높여가야 하겠지만, 소비자들이 그곳에 와서 느끼게 될 감정의 공유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몇 사람이 왔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관객과 관람객이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돌아갔는지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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