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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보통의 상품을 소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소비할 때도 사람들은 티켓 값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티켓 값이 얼마냐에 따라 전시나 공연의 티켓 판매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티켓 가격(Price)이란 문화예술작품과 서비스에 대한 효용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문화예술 공연이나 전시에는 비싸다고 해서 사람들이 적게 모이는 것도 아니고, 싸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지도 않는다는 특이한 현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티켓 값을 얼마로 책정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 어떤 방법으로 티켓 값을 정해야 적정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제공하는 문화예술작품과 서비스는 가치재(價値財, merit goods)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가치재란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입하기를 희망하는 양보다 더 많이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재화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문화예술작품은 더 널리 제공되어야 한다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그렇지만 가치재의 시장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는 일반적인 시장재(market goods)에 비해 그 값어치를 평가하기가 본질적으로 어렵다.
어떤 문화예술작품을 공연하고 전시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 비용을 관객이나 관람객의 티켓 구매를 통해 벌충해야 한다는 시장의 특성상, 티켓 값이 고가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소비자들이 티켓을 사줘야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투자비의 상당액을 회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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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에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공연 장면 (2017).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
티켓 가격은 공연이나 전시의 규모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이에 못지않게 예술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출할 수 있는 가격대의 수준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정된 가격 조건에 따라 티켓을 살 수 있는 문화예술 소비자 계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공연이라도 좌석의 위치나 편안함 또는 공연의 시작 시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기금, 투자자, 후원사, 협찬사를 확보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도 가격대가 결정된다. 티켓의 가격이나 할인 혜택은 문화예술 소비자들이 티켓을 구매하겠다는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티켓 가격을 얼마로 책정했느냐에 따라 문화예술작품의 공연이나 전시에 있어서 생산성이나 성과 평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티켓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는 이래저래 고민꺼리일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티켓 값을 더 높게 책정하려고 해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무조건 높게 올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투입한 노동량에 대비해 산출물의 결과를 따져보는 1인당 생산성이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수백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1인당 생산성이 특별히 높아지지 않았다. 오페라 공연을 예로 들면 1800년대에 공연할 때나 2019년 현재 공연할 때나 동일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의 걸작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1816)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위대한 희극 오페라의 전형으로 알려진 이 오페라(원제 Almaviva, o sia l'inutile precauzione)는 17세기 스페인의 세빌리아(현재의 세비야) 지역을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오페라가 완성되려면 세빌리아의 이발사인 피가로, 바르톨로의 도움을 받는 처녀 로지나, 로지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알마비바 백작, 로지나의 후견인으로 그녀와 결혼하려는 부유한 의사 바르톨로, 그리고 로지나의 음악교사인 돈 바질리오라는 핵심 인물 5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 오페라 공연에서 1인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자는 차원에서 여주인공 로지나의 후견인 바르톨로를 공연에서 빼버리거나 '방금 들린 그 음성(Una voce poco fa)' 같은 멜로디를 제외시킬 수 없다.
이 오페라는 또한 1막과 2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솔로, 2중창, 3중창을 거쳐, 6중창으로까지 확장되는 선율이 다시 합창과 만나 생동감 넘치는 대미를 장식한다(점층법인 '로시니 크레셴도'). 이 작품에서는 단원들의 합창이 희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만약 예산 때문에 합창 단원의 수를 줄여버린다면 오페라의 감동적인 여운은 반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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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초연 포스터 (1816). /사진=김병희 교수 제공 |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손쉽게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동자(출연자)를 함부로 감축시키면 곤란하다. 1인당 생산성을 높이려고 출연자의 수를 줄이면 공연의 내용과 작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공연에서는 생산성의 지체(productivity lag)라는 문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만약 출연자 1인에게 투입되는 비용을 줄인다 하더라도 생산성의 지체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티켓 가격을 책정할 때는 늘 고민스럽고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마련이다.
평균 비용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한계 수입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적정 수준의 티켓 값을 정해야 바람직하다. 이런 기준에 따라 티켓 가격을 정하면 그에 합당한 정도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만약 공연에 대한 수요 곡선이 평균비용 곡선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어떤 공연에 대한 관람을 최대한 장려하는 정책을 취한다면 생산량을 손익 분기점까지 높일 수 있다. 이때는 티켓 값을 적정 수준보다 낮은 가격대로 정하면 된다.
만약 어떤 공연에 대한 수요 곡선이 평균비용 곡선을 밑도는 상황이라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이윤은 물론 공연에 투자한 실비도 회수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의 보조금도 없고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작품을 공연하기 어렵다.
이 경우에 정부에서는 문화예술공연의 가치재적 성격을 고려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성의 지체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생산성의 지체 문제가 계속되는 주요 원인은 비용 병리(cost disease) 현상 때문이다. 다른 산업 부문에서 인건비 등 생산비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자연스럽게 생산비나 생산성의 격차가 증가하는 추세가 비용 병리 현상에 해당된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겠다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화예술 분야와 다른 산업 분야와의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용 병리 현상도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문화예술 펀드를 조성할 때도 되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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