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알고 있었다"고 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워
"감정적 대응으로 경제 위기 초래…이제 멈춰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가운데 정부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비판이 일고 있다. 일본의 ‘보복’은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외교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를 초래한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상조 정책실장은 지난 3일 “우리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롱(long)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안을 주시하며 사전 대응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본의 발표가 나온지 3일이 지났음에도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아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뚜렷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산업자원부가 삼성·SK·LG 등의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들은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됐다. 그간 사전 징후가 있었음에도 파악하지 못한 채 ‘기업 탓’을 하고 있다는 질타다.

실제로 일본 재무상은 지난 3월 의회에서 “일본 기업 피해가 현실화되면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부터 일본 자민당 내부에서 제재안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레 가해진 보복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일본 정부가 사흘간 불화수소 수출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산업부는 이 같은 내용을 기업을 통해 보고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일 당정청이 모여 “앞으로 반도체 소재 산업에 매년 1조 원가량을 투자해 국산화를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기업이 1조원이 없어서 국산화를 못했겠냐”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2017년 7월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만찬에서 만나 밝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보복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기업들의 고심은 더 깊어졌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는 규제 품목의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초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일본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경제 관계상 한국이 얻을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는 “일본이 시장점유율이 높은 3개의 품목을 골라서 규제한 것은 신중한 검토를 거친 결과”라며 “이는 추가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다음달 1일 ‘수출무역관리령’을 개정해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경우 국내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장 교수는 “이것이 전형적인 일본식 대응자세인데, 너무들 가볍게 보고 있었다”며 “국내 중소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는 집중적인 전략이 필요하나, 이번 사태에 대응할 시간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일본과의 배상 문제는 국제법으로 매듭지었어야 했는데, 일본 정부도 아닌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해 이 같은 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현진권 자유경제포럼 대표는 “일본의 보복은 상식적 차원에서 이해 가능한 인과응보”라며 “정치로 경제를 재단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반일 감정을 이용한 정부의 대응이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며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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