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감정'에 편승한 정부…위기 돌파 가능할까
경제 악화 '일본 탓' 아닌 정부 책임…면죄부 안돼
   
▲ 조우현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조우현 기자]문재인 대통령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경제 위기가 악화일로를 달려 원망의 목소리가 거세지려던 찰나,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됐다. 모든 것을 ‘일본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방어권을 얻어냈다는 의미다. 앞으로 공개될 엉망진창의 경제 지표 또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되니 정부 관계자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 같은 수법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가지 않고, 일본 제품은 절대 사지 않겠다는 ‘반일’이 곧 애국으로 묘사되는 요즘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경제가 망가지는 것쯤이야 너른 마음으로 이해할 국민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세태에 편승하지 않으면 ‘친일’로 낙인찍힐 테니 다른 의견이 끼어들 여지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기업들만 죽어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업체 측과 만나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부회장의 직접 대응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소재 수급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함을 반증한다.

물론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뾰족한 수가 안 나와서 그렇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인들을 불러 대책을 강구 중이다. 그러나 본질을 빗겨간 회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백날 회의만 할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외교’로 담판 짓는 것이 옳다. 애초에 이 문제가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정부 간 갈등에서 빚어진 외교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정치적 대응’은 삼가자는 분위기다. 관계를 망가뜨린 당사자가 대응을 하지 않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이 직접 수습에 나설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모로 봐도 무책임한 정부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미움으로 똘똘 뭉친 국민들은 ‘반일 감정’ 하나로 정부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저 이 부회장 혼자서 고군분투 중인 거다. 

더 암울한 건 ‘반일’ 이슈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는 것이다. 반일만큼 확실하게 표를 얻을 수 있는 선거 전략이 없으니 질질 끌수록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유리한 쪽은 현 정부와 여당이다. 야당에서 이를 방어해야 하겠지만, ‘친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별다른 대응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전략이 현실화 된다면 몇몇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숱한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고, 그야말로 국가 경제의 ‘폭망’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미움, ‘반일 감정’이 국민들 마음에 기본 값으로 탑재돼 있는 한 현 정부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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